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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호도협 메리설산 트레킹(2017.7.27-8.4)
작성자 정*호
작성일 2017.08.09


1. 출발, 그리고 ~
출발하는 날부터 비행기 연착으로 범상치 않은 여행의 서막을 열었다. 특히 스릴만점의 성도공항 착륙 직전의 급상승은 만감을 교차하게 했다. 막 착륙하겠다는 멘트가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아 고도를 높이며 기체가 흔들거리는 스릴속에, '이 운명은 아무리 내가 걱정을 해도 아무 소용이 없으니 모든 것은 그저 하늘과 조종사에 달렸을 뿐 아무것도 할 수 없고, 걱정해도 소용없으니 홀 건너 좌석에 눈감고 졸고있는 저 이들이야 말로 가장 현명하구나' 생각하며, 만일 이대로 끝나면 내 가족들에게 돌아갈 보험료가 얼마나 되며, 그들의 삶이 혹 비틀리진 않을까 별 생각이 교차하나 내 손으로 할 수 있는 것은 없는지라 그저 운명에 맡기고 나도 눈 감고 휴식이나 취한다. 그러다 보니 비행기는 상해 임시정부가 망명 생활을 했던 충칭으로 회항하여 두어 시간만에 지상에 안착하였다. 다시 날씨가 좋아지면 성도로 향한다니 내리지도 못하건만 그렇게 난생처음 충칭에 몸을 담았다가 다시 서너시간만에 성도로 날아가 안착하였다. 충칭이라는 엉뚱한 도시로 회항했어도 땅에 내려 앉았을 때 느끼는 안도감이라니 사람은 땅의 생물임을 확실히 느꼈다.


2. 메리설산의 황금새벽
같이 출발한 일행 한 부부가 부인의 오빠 부음소식에 급 귀국길에 올라 우리는 10명에서 8명으로 인원이 줄어 단촐한 일개 분대가 되었다. 부인 오빠의 부음소식에 가이드(여장 현지 엄광성)가 어찌 조치했는지 두 사람은 무사히 귀국길에 오르는데 성공하고, 우리는 비행기 연착때문에 틀어진 일정(성도에서 여강행 국내선 놓쳐 가능한 다음 비행기로 샹그릴라로 일정 변경)을 조금이라도 만회하려고 다시 부지런 떨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샹그릴라 송찬림사에서 마니차를 힘껏 돌리고 시설 좋은 호텔에서 하루를 머문 후, 우리 팀은 마침내 가이드의 노고와 대원들의 협력과 임기응변속에 더칭에서 비례사까지 도보 여행일정 포함하여 샹그릴라, 더칭, 비례사, 메리설산으로의 여정을 지속해 메리설산 상위뻥의 숙소에서 지친 하루를 녹일 수 있었다. 그날 밤 처음보는 메리설산 창공의 쏟아지는 별빛, 그리고 다음날 새벽에는 메리설산을 비추는 태양빛을 반사하며 황금빛으로 빛나는 얼음의 봉우리, 그 웅장함과 찬란함
그것이 그곳까지의 긴 여정이 왜 꼭 필요한 것이었는지를 웅변했다. 안 왔더라면 저 황금 봉우리를 어찌 보았을까? 그리고 다음날은 얼음호수, 설산에서 흘러 내리는 차디찬 물이 그 높은 산위에 호수를 만들었다. 그곳에서 돌탑을 쌓아 올리는 우리 대원들. 분명 큰 돈을 벌게 될 것이다. 나를 포함하여.

 또 그 다음날은 신폭, 그 곳에서 폭포수를 머리에 맞으며 성소를 세번씩 돌아  소원을 빌어 보았으니 분명 금년 우리 집안에 큰 복이 있으리라. 그날 저녁 메리설산 상위뻥 객잔에서 하루를 자면 내일은 호도협을 향해 나그네 길을 떠난다.


3. 비농계곡과 롼찬강 대협곡, 호도협 트레킹
다음날 메리설산에서 호도협으로, 비행일정 변경으로 원래 가려던 순서(호도협트레킹 이후 메리설산)와는 반대가 되었지만 진짜 차마고도를 걷는 이 여행의 백미 일정인 비농계곡에서 롼찬강대협곡의 차마고도로 이어지는 트레킹 길은 정말 옛 상인들이 말과 차를 거래하기 위해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걷던 바로 그 길을 실감하는 여정의 외길이었다. 새롭게 단장한 듯, 콘크리트로 바닥을 다지고 길옆에 수로까지 정비한 길이건만 고작 말한필에 사람하나만 달랑 지날 듯한 좁은 폭의 길이 천길 낭떠러지를 바로 내 오른쪽에 두고 터벅 터벅 아니 후덜 후덜 걸어야할 유일한 길이었으니, 예전에 거상들이 말 수십필 혹은 수백필을 끌고 이 길을 나섰다가 마주오는 상대 거상을 만났다면 도대체 그 난감함은 어떠했을까 십분 상상이 간다.

엄광성 가이드 말씀인 즉, 이렇게 거상들이 서로 만나게 되면 돈 많은 자가 승자가 되는데, 상대 물건을 말째로 통째로 다 사서 천길만길 절벽 아래로 다 밀어 버리고 가던 길을 계속 갔다는 것이다. (돈이 적은 자는 얼마가 됐든 그 것만 챙겨서 제 살길 찾아 되돌아 갔겠지. 본전만 찾아도 다행),

롼찬강 대협곡을 후덜후덜 걸어 넘은 우리 나그네들은 빵차를 타고 호도협 인근 객잔으로 거처를 옮겼다. 다음날 아침 길을 나선 우리는 마침내 올듯말듯한 비를 뜷고 호도협이 굽어 보이는 산길을 하염없이 걸어 올랐다. 비가 오다말다 했지만 고지에서 호도협은 아득히 멀지만 웅장하게 굽어 흐르는 모습을 자신있게 우리에게 선보였다. 차마객잔에 이르러 토종닭 백숙으로 기진한 몸에 기를 불어 넣었다. 그리고 대장정을 마무리하고자 이제 다시 빵차를 타고 떠났다. 여강 공항을 향해.
여강 공항에서 그동안 애써주신 엄광성 여강 현지 가이드와 이별을 고했다. 이번 여행에 엄 가이드가 유독 고생을 많이 했다. 들어 오는 날부터 비행기연착으로 성도공항에서 여강으로 가지 않고 샹그릴라로 우리 일행이 여정을 바꾸는 바람에 엄가이드도 급히 샹그릴라로 어렵게 어렵게 막히는 교통을 가르며 찾아와 우리와 조우했고, 얼마되지 않아 집안 상을 당한 부부를 귀국시키기 위해 애썼으며, 손해 본 일정을 조금이라도 만회해 보려고 떼쓰는 우리 대원들의 장단에 맞춰보려고 고민도 하고...그래도
친절하게 미소를 잃지 않고 최대한 가능한 일정 조정으로 애쓰고, 노력했다. 이제 그와의 작별 시간이 된 것이다. 마침내 여강공항에 도착한 것이다. 여강에서 그와 헤어지는 우리들은 이별의 아쉬움을 진하게 느끼고 있었다. 어느새 동생처럼 느껴지기 시작한 것이다. 어쨌든 그렇게 우리는 헤어져야만 했다. 만나고 헤어짐은 운명인 것을. 내가 처녀라면 그대가 총각이라면 아님 그 반대라면 어떻게 해 볼 수도 있을지 모르지만 그렇지 않은 다음에야.


4. 귀국길, 엄광성 가이드의 꼼꼼함 덕분에 무사히 비행기에 오르다.
여강에서 중국 국내선으로 갈아타고 성도에 도착한 우리 일행은 성도에서는 짐을 찾자 마자 황당한 상황을 만났다. 성도 현지가이드로 당초 나오셨던 가이드가 아니라 낯모르는 가이드가 대신 나온 것 까지는 그렇다하더라도 이 가이드께서 너무 황급히 국제선 출국장 쪽으로 무조건 따라오라고만 하고 가버리는 바람에 대원들이 길을 잃어 버리는 사태가 벌어졌다. 우리가 탑승할 아시아나 항공기는 새벽 2시인가 탑승이라 여유가 있었는데, 이 가이드께서는 막바로 출발할 그 전 비행기로 착각하신 것이 원인인 듯 하다. 아무리 그래도 인원이 제대로 쫓아 오는지 확인은 하고 출국장으로 이동을 해야 하지 않을까? 탈 사람이 없는데 출국장에 일찍 가는게 무슨 소용인가? 더 황당한 일은 그 이후에 일어났다. 그때까지 우리 대원은 누구하나 비자에 대해 걱정한 적이 없었지만 정작 티케팅 창구직원이 "비자?"하고 물을 때 우리 모두 서로 눈만 뻐끔뻐끔... 앗차, 아무도 비자가 없었던 것이다. 아 물론 개인비자를 쓴 대원은 빼고 말이다. 공용비자가 없었다.

나중에 알고보니 앞서 떠난 부부께서 출국을 위해 비자가 필요해 들고 가시면서 비자를 분리하여 성도 가이드에게 맡겼다는 것인데 이 부분이 새로운 성도 가이드가 나오면서 전혀 당사자간 인수인계가 되지 않았던 것이다. 이거야 말로 초대박 사건. 어쩌면 개인비자를 들고 나온 몇사람 빼고는 중국에 장기체류하게 될 지도 모를 일...다만 그 가이드가 서둘러 주지 않았더라면 비자가 없다는 문제를 깨닫는 데까지는 더 긴 시간이 걸렸을 지도 모를 일. 모든 기분 안 좋은 일이 다 나쁜 일인 것만은 아니라는 것. 세상의 오묘함이라니. 그 가이드의 조급함 덕에 사태를 빨리 알아채어 시간 여유를 두고 엄광성 가이드와 접촉해 사태를 해결할 수 있었으니 만일 뒤늦게 알았더라면 어쩔 뻔 했을까?
이 사태가 그나마 해결의 실마리가 풀린 것은 여강 가이드 엄광성 가이드께서 혹시 모를 경우에 대비해 이 공용비자를 자기 스마트폰에 촬영해 두었기 때문이었다. 겨우겨우 이 비자를 전송받아 아시아나 성도 사무실에서 프린트를 하고, 아시아나에서 중국 이민국 당국에 유선통화를 하고 어쩌고 해서 어쩌면 장기 체류해야 했을 우리 대원들이 무사히 아시아나 항공 귀국비행기 편에 오를 수 있었으니
참으로 이번 여행은 시작부터 흔치 않은 경험을 선사한 여행이었다. 다행히도 엄광성 가이드의 꼼꼼함과 아시아나 항공의 협조로 마무리를 잘 하였다.


5. 후기
개인적으로는 마지막 이틀간 건강관리에 실패해서 비염이 도저 귀국후 약을 먹고 주사 맞고, 지금도 약을 복용중이다만 그래도 메리설산의 비경, 그곳에서 승마를 하고 신폭까지 오가던 경험, 호도협의 장관, 샹그릴라 송찬림사의 세계 최대 마니차 돌리기, 길가에 자유롭게 풀어 놓고 팔자좋은 돼지의 삶을 살게 해 주는 티벳식 가축사육방식, 그 길거리의 귀여운 돼지, 닭, 야크 들이 눈에 밟힌다. 우리 가축도 저렇게 살다 죽을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싶다. 그렇게 하려 하면 고기값이 엄청 오르겠지만... 돼지 축사 옆에 살짝 재배하는 아름다운 꽃, 범상치 않아 사진으로 후에 확인해 보니 양귀비였다는 것. 등등 잊지 못할 추억이 되어 새로 한 주가 시작되어 중반이 되었지만 후유증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언젠가 다시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 아마도 기회가 되면 못 가본 곳을 가려 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