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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히말라야를 걷다 전용진
작성자 전*진
작성일 2018.02.03


히말라야를 걷다.

 

                                                                                                        서울여고 전용진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이 대한민국에서 열린다. 1월 신년사에서 북이 우리 정부에 메시지를 보냈다. 그래서 대한민국이 그 메시지에 응답 하면서 남북이 얼어붙은 남북관계의 물고를 트려고 한다. 난 이러한 남북의 소식을 접하면서 멀리 네팔로 히말라야 트래킹을 떠난다.

 

나는 히말라야의 오솔길을 걸으며 사색하며 웅장한 산군 속에서 자연이 주는 걷기의 묘미를 곱씹으며 트래킹을 즐기려고 하였다. 인간은 자신이 길을 가는 속도에 따라 세상과 자연을 느끼고 풍경을 마음에 새길 수 있다. 80km의 속도로 도로 위를 달리면 80km로 세상과 사람이 다가왔다가 사라지고, 자전거로 길 위를 30km로 저어가면 사람과 세상이 30km의 속도로 내게 다가온다. 또한 뚜벅 뚜벅 길 위를 걸어가면 그 속도에 어울리게 사람들이 다가온다. 길 위를 내달리는 속도에 적합하게 세상과 소통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사색하고 자연 속에서 인생의 의미를 곱씹으려고 할 때 걷고 또 걷고자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네팔의 카트만두에서 포카라로 이동하여 지프를 타고 트래킹 출발지인 힐레(1430m)에 도착, 난 환호성을 질렀다. ‘아! 드디어 지도상에만 존재하던 그 땅 그 길을 내가 걷기 되는 구나’하며 걷고자 하는 조바심을 좀처럼 감출 수가 없었다. 내게는 신비한 땅이고 거대한 산이 존재하는 곳이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에게 나의 설레임을 살짝 감추며 걸었다. 저 멀리 머리에 흰 눈을 이고 있는 마차푸차레를 보며 엷은 미소를 지을 뿐이다. 첫날, 힐레에서 울레리(1960m)까지 걸으며, 내가 계획하고 생각한 트래킹의 목적인 내 생에 대해 깊이 생각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의도와 다르게 자꾸 목적이 자꾸 달아난다. 의식적으로 잡지 않으면 머리에 떠오르지 않았다.

울레리 롯지에서 히말라야의 첫 밤을 맞았다. 하늘에 별이 가득하여 눈이 부실 것이라 생각했는데 하늘의 별은 반겨주지 않았다. 다만 저 멀리 산 속 깊은 곳에서 띄엄띄엄 불빛이 반짝이는 것을 별보다 신기하게 느꼈다. 산이 높아 새벽에 추울 것이라 예상하여 침낭에 두툼하게 옷을 입고 잠자리에 든 것이 문제를 일으켜 감기에 걸렸다. 몸에 이상이 생겼다.

둘째 날 부터 본격적으로 안나푸르나(4130m) 베이스캠프까지 트래킹 시작이다. 길은 그 옛날 네팔 사람들이 첩첩산중에서 마을과 마을을 오가며 생계를 유지하기 다닌 길이 바로 오솔길이다. 오솔길은 숲속, 들판, 풀밭, 황야 등에 난 좁은 길이다. 이 길은 인간 혼자서도 만들 수 있는 길이다. 직립 보행을 하게 된 동물 종이 반복적으로 걸어 다닌 자취가 결국 산 중에 생긴 오솔길이다. 이 길은 무엇보다도 네팔의 산중 사람들이 발로 걸어서 생긴 것이다. 즉, 히말라야 산중에 사는 사람들이 산 속 마을과 마을을 발로 걸어서 오가며 살아온 삶의 흔적이 만들어낸 길인 것이다.

 

나는 높은 산 속 골짜기 까마득한 비탈에 밭을 일구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부지런히 오고갔을 그 길을 걷고 또 걸었다. 두발로 뚜벅뚜벅 걸어 때론 천길만길 낭떨어지 옆으로 난 길을 걷고, 끝날 것 같지 않은 계단 길을 오르고, 내려가도 내려가도 그 끝이 보이지 않는 내리막길을 걸었다. 이렇게 내가 길 위를 두 발로 뚜벅 뚜벅 걸음을 옮겨 나아갈 때 저 멀리 만년설을 머리에 이고 있는 마차푸차레(6997m), 다올라기리(8167m), 안나푸르나 남봉(7219m)의 풍경이 슬며시 마음에 스며들어 걷기로 지친 나의 몸을 위로한다.

 

나는 푼힐에서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까지 약 90km의 산길 위를 걸었다. 길 위를 걸어가는 것은 사람이다. 길 위를 걷는 사람이 어떤 상태인가 하는 부분은 길 위를 걸어갈 때 대단히 중요한 문제이다. 왜냐하면 길 위를 걷는 사람의 상태에 따라 그 길이 다르게 다가오고 길 위를 걷는 경험의 세계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길 위를 걸어가는 사람이 건강하면 길 위에서 사색도 하고 자연을 걷는 묘미도 곱씹으며 걸을 수 있다. 오로지 두발로 걷는 행위 외에 다른 무엇도 할 수 없다. 그래서 길 위를 걷는 사람의 건강 상태가 나쁘면 그는 자신이 걷는 그 길에 갇히게 된다. 나는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까지 오르는 그 길의 감옥에 갇혀 허우적거렸다. 히말라야 오솔길을 걷는 걷기의 기쁨도 저 멀리 보이는 설산의 감동적인 풍경도 길 위의 감옥에 갇혀 길 감옥 안 창살너머로 잠시 잠깐 맞이하였을 뿐이다.

 

히말라야 그 산에도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장엄한 산비탈에 그들은 밭을 일구고 작은 오솔길을 내어 마을과 마을을 오가고 있었다. 그 길은 그들에게 인간적 삶을 위한 길이었고, 그들이 살아온 발자취였다. 나는 또 다른 사람들의 발자취를 따라 그 길 위를 걷고 또 걸었다. 난 히말라야 오솔길을 걸으며 오래전부터 이 길 위를 걸어갔던 사람들에게 깊이 고개를 숙였다. 이는 길 위를 걸어간 사람들에 대한 나의 최소한의 예의이다. 왜냐하면 길은 그 길 위를 걸은 사람들의 역사이고 삶의 궤적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