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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칼라파타르 등정기
작성일 2016.10.24
작성자 김*성
상품/지역
트레킹인도/네팔/스리랑카


히말라야 칼라푸트라 등정기

 

10/4(화)

 

드디어 출발이다. 어제 좀 일찍 잤더니 중간에 2번 잠이 깼고, 결국 새벽 5시에 완전히 일어났다. 다시 한번 짐을 챙기고, 밥에 달걀 2개와 올리브유를 뿌려서 전자레인지에 1분 45초. 이 정도가 딱이다. 마침 신문이 왔길래 티비와 신문을 보면서 밥을 먹었다. 일본이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 기분이 별로다. 일본 사람들도 영어를 매우 못하는데 어떻게 노벨상을 타지? 영어 못하는 대다수와 달리 잘하는 엘리트가 있겠지. 우리도 형평성뿐 아니라, 수월성을 추구하는 영재교육에 좀더 신경써야겠다. 샤워를 하고 옷을 입고 마지막으로 휴대용 재떨이를 챙겨서 나오다가 다시 집에 들어가서 가스밸브를 확인했다. 그리고 편의점에서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담배를 한 갑 샀다. 라이타 반입이 안되고, 흡연자가 아무도 없으면 결국 담배를 포기하게 되겠지. 7시가 조금 넘어서 집을 나서서 한참을 기다려서야 간신히 택시를 잡을 수 있었다. 63세라는 기사님은 엄청 수다스러웠다. 히말라야에 간다니까 엄홍길 대장은 어떻게 돈을 버냐고 물어보셨다. 하긴 나도 좀 궁금했었다. 주워들은 이야기로 답변했다. 특강료, 기업의 후원, 자문료 등등. 그리고 히말라야에 세운 학교얘기와 그 곳을 지날 때 후원금을 낸다는 얘기도 했다. 별 것도 아닌 답변에 고맙다고 하시는 기사님을 보고 역시 감사의 미덕은 자기 자신을 위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부청사 정류장에 도착하니 7시 45분. 요금은 4,900원. 인터넷으로 예매한 버스표를 발권하고 담배를 피우며 잠시 휴식. 옆에는 80리터 배낭에 침낭까지 앉은 젊은이가 나처럼 공항에 가려고 준비하고 있었다. 설마 우리 일행? 아니겠지. 공항버스가 5분 늦게 와서 8시에 도착. 화물칸에 카고백을 싣고 내가 제일 좋아하는 3번 자리에 앉았다. 앞이 잘 보여서 시원한 자리이다. 공항에 가는데 계속 안개가 자욱하다. 조금 걱정되었지만 분위기는 오히려 그럴 듯했다. 청주를 지날 때 쯤에는 날도 밝고 안개도 걷혔다. 중간에 입장휴게소에서 15분간 휴식. 화장실에 갔는데 핸폰이 부르르 떤다. 누가 벌써 격려문자를 보냈나 했더니 정훈이 용돈이 계좌이체 되었다는 문자였다. 허탈. 1년동안 얘기도 한번 나누지 않은 아들에게 용돈이 이체되었다는 문자가 왜 하필 이렇게 가슴 설레는 중요한 날 아침에 왔을까.

공항에 도착하니 10시 40분. 너무 일찍 도착했다. 인터넷에서는 3시간 5분 걸린다던 버스 시간이 2시간 40분밖에 걸리지 않았다. A18 데스크 근처에 가니 혜초여행사 김시온 대리가 카고백을 먼저 알아보고 나를 불렀다. 사전 설명. 네팔 공항에 도착하면 입국비자서류에 사진을 붙이고 공항은행에서 비자비 25$을 내고 영수증과 비자서류를 들고 without visa 데스크에 가서 비자를 받으란다. 그리고 우리팀의 음식재료박스를 내 짐으로 부쳐달라며 사례로 여행용 파우치셋트를 선물로 줬다. 그리고 다이막스 2알과 귀마개도 선물로 줬다. 보험계약서와 여행계약서에 서명을 해서 넘겼다. 짐을 부치고 출국수속을 하는데 그것도 일찍 끝나 버렸다. 거의 11시반쯤 모든 수속을 마쳤다. 출국장에서 항공성(고공)치통이 걱정되어서 우선적으로 타이레놀(유사품)을 샀다. 그리고 면세점에서 담배 한보루를 샀다. 16일이지만 한 보루로 버텨볼 생각이다. 짐이 자꾸 불어나면 안될 것 같다. 마침 어가행렬이 있어서 구경. 임금과 왕비도 멋있지만 안내해주고 사진을 찍어주는 궁녀가 예뻐서 그 친구의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식당을 찾는데, 2층에 식당이 보이는데 계단이 없어서 물어보니 그건 외부식당이란다. 29번 게이트에 가면 푸드코트가 있단다. 가츠돈부리를 시켜먹고 양치질도 했다. 이제 12시반이 조금 넘었다. 탑승시간은 1시 35분. 출발시간은 2시 5분이다. KE695. 게이트도 32, 좌석도 32G이다. 이 와중에 곽교수는 또 전화를 해서 소청심사에 관한 얘기를 한참이나 상의했다. 히말라야에 가면 전화통화가 안되겠지. 조용히 명상이나 해야겠다. 아까 혜초여행사 데스크에서 담배와 라이터에 대해 물어봤더니 우리 일행 중에 최소한 한명은 흡연자인 것 같단다. 그래서 담배도 한보루 산 것이다.

공항에서 어떤 여자가 콘센트에서 핸폰을 충전하길래 나도 일단 풀로 충전해 놓으려고 충전기를 꺼내서 연결했더니, 이게 웬일, 먹통이었다. 여기 저기 옮겨서 끼워봐도 역시 먹통. 부랴부랴 충전기도 하나 샀다. 낭패를 볼 뻔했다. 역시 하나하나 다 미리 철저하게 체크를 해야겠다. 마침 새로산 충전기는 2개짜리라서 핸폰과 함께 보조배터리나 에그도 충전할 수 있게 되었다.

지금 시간은 5시 45분. 이제 비행시간도 절반 조금 넘었다. 앞으로 3시간 남았고 도착현지시간은 2시반이다. 지금은 상하이를 넘어 창사를 지나 구이양이라는 곳을 지나고 있다. 비행기에 탑승했는데 웬 네팔 할머니와 아저씨가 자리를 바꿔달란다. 창가자리가 무섭다나. 나도 일부러 여행사에 부탁해서 복도자리로 정한 건데, 양보해달라니...그래도 경로사상을 생각해서 자리를 양보했다. 이번엔 그 아들인 듯한 아저씨가 항공사직원과 말다툼. 짐작컨대 다른 사람의 영수증으로 물건이나 세금을 환급받으려다가 직원한테 저지당한 모양이었다. 직원은 “당신 때문에 이륙이 지연된다”고 소치쳤다. 옆자리 아저씨가 다리도 쩍벌리고 1봉지씩 나눠주는 땅콩도 여러개를 달라고 하고 맥주도 여러 캔을 달라고 하는 등 매너가 안좋은 사람이었지만, 항공사 직원도 외국인한테 또박또박 차근차근 설명하지 않았고 빠른 한국말로 쏘아부치다니, 다들 조금 심했다는 생각이 든다. 카스맥주 한 캔과 땅콩 한봉지를 먹고 영화를 보려는데, 옆 자리 아저씨가 땅콩 한봉지를 건넨다. 내 속마음을 들킨 것 같아 좀 부끄러웠다. 사양했지만 강권하길래 결국 고맙게 먹었다. 그리고 영화 “스타트렉: 비욘드”를 보는데 계속 조는 바람에 되감아보기를 반복하고 있다. 이륙후 2시간쯤 지나자 기내식 배급. 비빔밥, 닭고기, 소고기가 있다길래 나는 비빔밥, 옆자리는 닭고기를 주문했다. 잠시후 띠용! 닭고기와 소고기에는 밥이 없이 고기만 주먹만큼 나온 것이다. 옆 아저씨는 또 밥이 없냐고 계속 투덜투덜. 결국 내 밥에서 서너 숟가락을 퍼줬다. 마구 맥주를 마시더니 식사 후에야 조용히 자고 있다. 나는 이제 “나우 유 시 미 2”를 보려고 한다.

이제 거의 도착이다. 한국시간으로 8시 50분. 이 곳 시간으로는 5시 35분. 비행기에서 간식으로 피자빵과 쥬스를 줘서 그리 배고프지는 않다. 다만 나가서 내가 혼자 알아서 비자발급을 받고 입국수속을 해야 한다는 것이 조금 어려울 것 같다는 것 뿐이다. 높이 날아서 그런지 창 밖으로 구름 외에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비행정보가 계속 지연되고 있다. 결국 9시도 넘어서 도착할 듯하다.

Singi Hotel 303호. 그런대로 괜찮다. 체크인을 하고 식당으로 이동. 1분거리. 스테이크, 생선, 치킨 중에서 선택하라길래 생선을 선택했다. sizzlet 맥주도 한잔했다. 한분만 소주를 즐기시고 나머지는 술을 별로 안하는 것 같다. 대전에서 3명이나 참가. 변호사 한분, 42년생 한분, 그리고 다들 60세가 넘은 분들이었다. 여성 한분은 63년생. ○○○라는 여자분은 64년생 동갑. 그 중에서 3명만 초보. 식사후 호텔로 이동하니 8시 정도. 일단 취침.

 

10/5(수)

 

전날 자다가 추워서 일어나보니 에어컨이 계속 켜져있었다. 에어컨을 끄고 다시 자다가 결국 새벽 3시에 일어나서 왔다리 갔다리. 샤워후 4시반에 내려와보니 다들 이미 내려와 있었다. 여성 두분만 지각. 버스를 타고 국내선공항으로 갔다. 호텔에서 불과 5분거리. 전날엔 차가 하도 막혀서 거의 30분이나 걸렸다. 검색대에서 라이타를 빼앗겼다. ㅠㅠ 공항 안으로 들어와서 도시락으로 식사. 빵, 크로와상, 쥬스, 삶은 달걀, 사과, 바나나, 오렌지 등. 정성들인 도시락이다. 식사후 비행기를 기다리는 중인데, 날씨에 따라 이륙일정이 달라진단다. 새벽부터 비가 와서 좀 지연되는 것 같다. 5시쯤엔 그쳤지만 하여튼 오랫동안 기다리고 있다. 6시 15분 비행기였는데 8시 조금 넘어서 탑승했다. 비행기에서 또 한참을 기다리다가 간신히 출발하는가 싶더니 그냥 공항만 한바퀴 돌고 다시 복귀. 루크라 공항사정이 안 좋단다. 다시 공항에서 무한정 대기하다 다시 탔다. 15인승 비행기인데 행운인지 제일 앞자리. 조종석이 코 앞에 보이는 자리였다. 스튜어디스가 사탕 한 알과 귀마개용 이불솜을 준다. 비온 직후라 후덥지근. 이제 막 우기가 끝났단다. 다음에는 10월말이나 11월에 와야겠다.

여기서는 기다리는 것이 일상이다. 다들 그러려니 하면서 무작정 기다린다. 불확실성에 이미 적응되었나보다. 우리는 아직도 불확실성을 답답해한다. 그래봤자 확실하게 아는 것도, 모든 것을 아는 것도 아니면서 말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불확실성에 안주하면 확실한 것을 찾지 않으려고 할지도 모른다. 지식이란 상대적으로 좀더 확실한 것이 아닐까. 학습이란 좀더 확실한 것을 찾고 익히려는 노력이고 말이다.

 

10/6(목)

 

다시 공항이다. 어제 무려 3번이나 비행기에 탔다가 내렸다. 처음엔 비행기로 공항을 한 바퀴 돌고 내렸고, 두 번 째엔 비행기 안에서 대기하다가 내렸고, 세 번째엔 버스에서 대기하다 그냥 나왔다. 공항에서 4시까지 기다리다가 철수. 만약 기다리지 않고 그냥 나오면 항공요금의 25%를 물어야 하고, 항공사가 비행을 최소하면 전액 환불 받는단다. 그래서 끝까지 일단은 기다려야 한단다. 점심엔 1시쯤 김밥도시락이 배달왔다. 나름 김치와 깍두기까지 준비했는데, 밥이 완전히 떡이었다. 떡으로 만 김밥. 그나마도 감지덕지. 공항에서 커피 4잔을 사서 돌렸다. 무려 250루피×4명. 한화로 거의 10,000원. 엄청 비싸다. 오후엔 ○○○ 선생님이 레드불을 사서 돌렸는데 한 캔에 무려 350루피. 역시나 엄청 비싸다. 후덥지근한 공항에서 기다리느라 미치는 줄 알았다. 그런데 기다리다보니 “이것이 네팔의 인생이다” 또는 “신의 뜻이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상황이 어떻든 순응하는 자세. 그런 긍정마인드가 행복지수를 높이는 것이겠지.

결국 4시반쯤 최종 취소되어서 다시 버스를 타고 “샹그릴라 식당”에 갔다. 한국인이 운영하는 것 같았다. (나중에 알고보니 고상돈 대원(박영석 대장?)과 친한 네팔인이 운영하는 곳인데, 고상돈 대원이 거의 자본을 대서 만들었다가 돌아가시는 바람에 네팔인이 졸지에 혼자 운영하게 된 곳이었다.) 삼겹살에 소맥을 마셨다. 다들 한잔 들어가서 그런지 짜증내거나 조바심내는 사람도 없다. 현지 사람이 오더니 추가 숙박에 대해 설명. 30$, 40$, 50$ 짜리(싱글은 2배)가 있으니 합의해서 결정하란다. 논의 끝에 40$짜리로 결정했다. 이 곳은 추가 숙박이라서 계약할 때 이미 지불한 싱글차지와는 별도란다. 마침 엔지니어출신인 ○○○ 선생님이 같이 자자고 해서 흔쾌히 수락했다.

호텔에 가보니 생각보다 좋았다. 전날 잤던 곳에 비해 10배는 좋았다. 예전에 궁궐이었던 곳을 왕조가 망하면서 호텔로 개조한 곳이란다. 그래서 외부의 ☆등급 평가도 없고, 세금도 내지 않는단다. 처음엔 40$이 매우 비싸다고 생각했고, 여자 한분이(경험이 많은 듯) 다시 알아보라고 해서 알아봤더니, 원래 1박에 150$짜리란다. 그러나 방에 들어가보니 아깝지 않았다. 마침 ○○○ 선생님이 맥주 한잔하자고 해서 정원에 있는 Patio Bar에 갔다. 우아한 등나무 의자에 앉아서 맥주 한잔하면서 많은 얘기를 나눴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등. 거의 “로마인 이야기”에 빠지신 듯하다. 키케로에 대해서도 완전 몰입. 영업시간이 10시까지라서 11시쯤 파했다. 올아와서 대충 씻고 취침. 브리드 라이트를 붙인 덕분인지, 맥주 덕분인지 한번도 깨지 않고 아침 6시까지 숙면을 취했다.

아침식사를 하러 내려갔는데, 식당도 최상급이었다. 스크램블이 없는 것 빼고는 최고 등급. 어제 맥주를 마셨던 속에서 커피도 한잔했다. 다른 분들도 숙소에 대해 만족하셨다. 안나푸르나에 갔다가 이 곳으로 합류하신 분의 말씀으로는 혼자서 기다리는 동안 140$짜리 호텔에 묵었는데 이 곳보다 훨씬 후졌단다. 다른 분들에게 얘기해서 결국 마지막 날의 숙소를 이 곳으로 바꾸기로 했다. 물론 추가 요금이 없다는 전제 하에. 식사후 짐을 챙겨 내려와서 화장실에 들렀더니 비록 수동식이지만 비데도 있다. 공항 화장실에 비하면 말할 나위 없이 좋다.

다시 공항에 와서 검색 및 수속. 전날엔 담배갑에 있던 라이터를 압수당하는 바람에 많이 불편했다. 이번엔 전날 식당에서 얻은 성냥을 담배갑에 넣어서 배낭에 넣었더니 아무런 제지없이 통과했다. 나중에 여행후기에서 흡연자를 위한 팁으로 알려줘야겠다.

오늘은 8시 30분 비행기란다. 그런데 9시 30분에서 10시쯤에 뜬단다. 약간 어이가 없지만 이제는 그러려니 하게 되었다. 슬슬 이 곳의 삶에 적응하는 듯하다.

전날 식당에서 추가주문해서 먹은 술값을 갹출하다가 돈이 남아서 공금으로 비축하기로 했다. 물론 총무인 내가 보관하게 되었다. 가만히 있어야 했는데, 그 놈의 오지랖 때문에 결국 내가 총무를 맡게 되었다. 남은 돈은 마지막 날의 만찬에 써야겠다. 7408.28루피가 나왔는데, 3590루피가 남았다. 어딜가나 총무신세이다. 내가 자초한 것이지만 말이다. 그래도 다들 나보고 수고 많았다고 격려를 해주셨다. 역시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하는 듯.

지금 시간은 10시이다. 아직도 공항에서 널부러져 있다. 이젠 비행기를 탄다고 기뻐하지도 말고, 못 탔다고 슬퍼하지도 말라는 말이 이해가 된다. 이젠 나도 서양여행객들처럼 의자가 아닌 땅바닥에 주저 앉는 것이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전날 식당에서 얻은 성냥이 제법 마음에 든다. 성냥개비가 아주 작고 가늘고 매끄럽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이 잘 붙는다. 점점 이곳의 좋은 점들이 하나씩 보이기 시작한다. 어딜가나 조금만 지나고 적응하면(≒정 붙이고 살면) 좋아지리라.

다른 분들의 표정도 슬슬 초탈한 것 같다. 약간은 지쳐 보이기도 하고 초탈한 듯 무념무상의 표정. 왜 인도와 네팔에서 불교가 융성했는지 알 것도 같다.

드디어 11시쯤 비행기를 탔다. 전날보다 제법 좋은 기종이라서 좌석도 편안하다. 활주로 끝에 가서 유턴을 한 후에 드디어 활주로를 박차고 올랐다. 구름 사이로 아득하게 보이는 작은 집과 다랭이 논밭. 그렇게 20여분을 힘차게 날아가다가 이게 또 웬일. 카트만두로 되돌아 간단다. 나원참, 어이가 없다. 다들 이제는 달관했는지 화도 안낸다. 전날의 첫 시도는 비행기 타고 공항 한바퀴, 두 번째는 비행기에 탔다가 내렸고, 세 번째는 버스타고 비행기 옆에서 대기하다가 되돌아왔다. 오늘 네 번째의 시도는 그래도 이륙해서 한참을 날았다. 이제 다섯 번째 시도. 스튜어디스가 또 사탕과 귀마개 솜을 주면서, 자기도 민망한지 웃는다. 오늘만 두 번째인데도 다들 또 사탕을 챙긴다. 역시 다들 공짜를 좋아한다고 옆자리의 ○○○씨가 웃는다. 이번엔 진짜로 루크라에 가겠지. 다시 비행기를 충전하고 20여분간 비행기에서 대기하다가 12시 10분에 두 번째 이륙을 했다.

드디어 루크라에 도착했다. 5번의 시도 끝에 도착했다. 정말 활주로가 너무 짧아서 이착륙이 어려웠겠다는 생각이 든다. 1시쯤 도착해서 Lukla Number 산장에서 점심식사. 비빔밥이다. 그것도 제대로 된 비빔밥. 디저트로 사과까지 나왔다. 배불리 맛있게 포식을 하고 잠시 휴직 후 2시 15분에 본격적인 트레킹 시작. 루크라는 제법 큰 마을이어서 상점이 즐비했다. 트레킹의 첫 번째 장벽은 ‘좁교’의 똥이었다. 좁교는 야크와 소의 혼혈종인데, 우리의 짐을 비롯한 모든 짐을 좁교가 운반한다. 그래서인지 거의 모든 길이 좁교의 똥밭이었다. 그리고 아직까지는 더운 날씨여서 땀이 많이 난다. 살떨리는 출렁다리를 지나서 계속 전진. 중간에 세컨 가이드 “람”이 운영하는 찻집에 들러서 따뜻한 밀크티를 마시고 다시 전진. 중간에 3번쯤 쉬고 ‘팍딩’에 도착하니 6시 20분. 5시반이 넘어서자 급격하게 어두워졌다. 헤드랜턴을 카고백에 넣은 것이 실수. 어두운 산길을 간신히 걷고 또 걸어서 또다른 작은 출렁다리를 지나 팍딩의 롯지에 도착했다. 또다시 푸짐한 저녁식사. 이번엔 제육볶음과 쌈채소, 그리고 된장국이다. 디저트는 바나나. 완전 진수성찬이다. ○○○ 선생님과 맥주 큰 캔을 4개나 시켜 먹었다. 식사 후에 방에 와보니 롯지라기보다는 펜션이다. 큰 방에 침대 2개. 화장실과 샤워실도 딸려 있었다. 와우. 다만 온수가 안 나온다. 식사 중에 나의 에그를 꺼내와서 작동을 시켜보니 연결은 되는데, 인터넷이 안된다. 좋다가 말았다.

올라오는 중간에 어느 롯지에 들러서 다들 화장실을 빌려 썼다. 개방이지만 팁을 넣는 통이 있었다. 공금으로 10루피를 넣었다. 화장실 팁이라니 애교가 있다. 공짜이지만 주면 받는다는 얘기다.

저녁식사를 마치고 방에 와서 찬물로 샤워를 해보려고 시도했지만, 온 몸이 덜덜 떨리는 냉기로 인해서 결국 포기. 수건에 물을 묻혀서 닦는 것으로 타협했다. 역시나 밤이 되니까 상당히 냉기가 느껴진다. 10시에 소등이라니 일찍 자야겠다. 내일 아침엔 6시 모닝콜, 7시 식사. 8시 출발이란다. 내일은 본격적인 오르막이란다. 남체까지 7시간 정도 트레킹. 내일부터는 3,000m를 넘어서기 때문에 본격적인 고소증상이 나타날 수 있으니 물을 많이 마시란다. 내일을 위하여 일찌감치 취침. 계곡의 폭포 소리를 자장가 삼아서 자야겠다.

 

10/7(금)

 

결국 잠을 거의 자지 못했다. 밤 11시반에 잠을 깨어 옆 침대의 이불까지 가져와서 덮었는데도 추웠다. 다시 취침. 그런데 이번엔 더워서 잠을 깼다. 이리 뒤척, 저리 뒤척. 춥다가 덥다가 한다. 감기기운인가 싶어서 걱정이다. 지금 시간은 새벽 4시반. 아직도 한시간 반이나 남았다. 짐정리를 다시 하고서 물없는 샴푸로 머리를 감았다. 얼마나 효과가 있을는지. 오늘 ‘남체’에 가면 고소 적응을 위해 제법 오래 머무를 것이기에 빨랫거리를 잔뜩 모아두었다. 꼭두새벽부터 밖에 나가서 담배를 한 대 피웠다. 나처럼 잠못이루는 분들이 몇몇 있었다. 비도 조금씩 내린다. 빗소리, 그리고 폭포소리 같은 계곡물소리. 좀 피곤하다. 좀더 자도록 해봐야지.

이제야 슬슬 멤버들의 이름과 얼굴이 맞아가고 있다. 아무래도 내가 총무이자 재롱둥이가 되어야할까보다. 가이드도 모든 일을 나와 상의하고 있다. 힘내자 파이팅!

9시 40분. 2,730m에 도착해서 밀크티를 마셨다. 야크는 수놈, 암놈은 ‘나크’란다. 그러니까 야크차가 아니라 나크차가 맞는 말이다. 찻값으로 공금 550루키를 지출했다.

이번 점심도 푸짐하고 맛깔났다. 예정보다 이른 10시 40분에 ‘몬조’에 도착해서 11시쯤 식사. 카레라이스이다. 와우. 디저티는 수박. 정말 푸짐해서 과식을 안하기가 어렵다. 이 높은 곳까지 온갖 식재료와 식기들, 그리고 조리도구까지 짊어지고 오다니, 정말 미안스럽고 고맙다. 물론 이 친구들의 직업이라고는 하지만 왠지 돈지랄하는 듯한 미안함과 죄책감이 든다.

중간중간 폭포와 출렁다리가 나오는데, 처음엔 멋있고 신기했지만, 자꾸 보니까 그러려니 하게 된다. 이제 12시 20분에 출발해서 ‘남체’로 간다. 4시간 예정. 지금보다는 조금 힘들어질 것이란다. 고산병 걱정만 없으면 달려가고 싶다. 그래도 천천히 가야 한단다. 고소 적을ㅇ을 위해서. 구름이 잔뜩 끼었는데도 따뜻한 햇살이 느껴진다. 신기한 일이다.

이 곳의 집들은 대부분 돌을 쌓아서 만들었는데, 마치 깎아서 만든 돌처럼 아귀가 잘 맞는다. 돌담도 제주도처럼 낮게 그러나 튼튼하게 쌓은 것 같다. 그리고 제주도에서 보던 정낭(긴 나무 3개를 대문처럼 걸어놓은 것)이 눈에 띤다. 이런 문화적 공통점이 어디에서 생긴 것일까.

4시반에 드디어 남체에 도착했다. ‘사쿠라’롯지에 입성. 사장님이 1977년에 고상돈 대원의 에베레스트 등정에 기여한 공로로 박정희 대통령에게서 체육훈장 동백장을 받았단다. 그러나 롯지 이름이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다. 알고 보니, 네팔에서는 외국인이 시설을 소유할 수 없기 때문에 일본인이 친한 네팔인에게 투자(?)하여 만든 곳이란다. 그리고 방안에 화장실이 없고 공용화장실뿐이란다. 역시나 좀 높이 올라온 느낌이 든다. 올라오는 도중에 ○○○ 선생님이 힘들어서 많이 뒤쳐졌다. 남체는 정말 크다. “트레커의 천국”이라는 별명답다.

저녁식사를 기다리는 중이다. 오늘의 트레킹은 제법 힘들었다. 경사도 심했고, 출렁다리도 지금까지 중에서 최고의 높이였다. 거의 100m가 넘는다. 7-8시간을 걸었다. 문제는 등산화. 밑창이 벌어져서 떨어지려고 한다. 가이드 쿠마르에게 부탁해서 접착제를 샀다. 붙어야 할텐데 걱정이다. 남체 위쪽으로 가면 신발을 살 수도 없단다. 식사 때까지의 휴식시간에 절대 잠을 자지 말란다. 자면 고산병이 심해진단다. 경험해보지 못한 것이라 좀 겁이 난다. 75세의 ○○○ 선생님이 내일부터는 힘들어서 합류하기 어려울 것 같다고 하시길래 다같이 설득하기로 했다.

식사전에 가이드가 오더니 일정 변경에 대해 나에게 설명했다. 비행기가 연착하는 바람에 하루가 날아갔기 때문이다. 결국 다들 내가 확실하게 총무라고 인식하는 것 같다. 역시나 안에서나 밖에서나 성격은 변할 수가 없겠지.

식사는 역시나 푸짐하다. 닭도리탕과 브로컬리튀김. 튀김이 매우 부드럽고 맛있었다. ○○○ 선생님은 또 소주. 나는 맥주 2캔을 시켜서 가이드와 ○○○ 선생님과 나눠 마셨다. 그랬더니 ○○○ 선생님이 커피를 쏜다고 해서 다같이 커피숍에 가서 우아하게 한잔. 그런데 주문은 커피 5, 쟈스민차 2이었는데, 밀크티를 가져오는 바람에 많이 늦어졌다. ○○○ 선생님이 상태가 안 좋으신 듯하다. 식사를 별로 못하셨다. 커피숍에서는 두 테이블로 나눠서 앉는 바람에 다같이 얘기하지는 못했지만, 그런대로 좋은 분위기였다. 휴식시간에 4명만 샤워를 하셨고, 나를 포함한 5명은 샤워를 생략. 사쿠라 롯지에서 돈을 주면 빨래도 해준다는데, 내일 빨래도 맡기지 못하겠다. 여분의 속옷과 양말이 없기 때문이다. 보다 심각한 문제는 역시나 신발이다. 점점 더 벌어지고 있다. 접착제를 사서 붙였는데 과연 버틸지 모르겠다. 류진석 교수님이 사주신 털모자를 쓰고 커피숍에 갔더니 다들 귀엽단다. 다른 사람들은 시장과 이곳 롯지식당에서 등반기념 털벙거지를 샀다. 나도 내려올 때 하나 사야겠다. 많이 피곤한데 잠을 잘 잘지 모르겠다. 이제 시간은 9시인데 벌써 자면 또 새벽에 잠을 깨서 우왕좌왕할텐데 말이다. 그나저나 고산병만 안 걸렸으면 좋겠다.

 

10/8(토)

 

남체에서의 하루가 시작되었다. 밤에는 정말 힘들었다. 9시에 취침했는데, 12시에 잠이 깼다. 코가 막혀서 숨을 쉴 수가 없었다. 브리드라이트를 붙이고 코 밑에 맨소래담을 바르고 마스크를 써봐도 별로 효과가 없었다. 이리뒤척 저리뒤척하다가 잠이 들었는데, 3시에 또 깼다. 한참을 앉아있으니까 코가 뚫려서 다시 잠시 취침. 결국 4시에 일어나서 완전히 기상했다. 엊저녁에 보온병에 받아놓은 온수를 수건에 묻혀서 온몸을 닦는 수건샤워를 하고 물없는 샴푸도 발랐다. 그리고 어제 접착제로 붙여놓은 등산화를 보니 상태가 별로 나아지지 않았다. 결국 오늘 등산화나 운동화를 사야할까 보다. 추가 숙박료 40$도 내야 하는데, 138$밖에는 남지 않았다. 80$쯤 환전해서 신발을 사야겠다. 루피는 3,500루피 정도 남았다. 새벽부터 설쳐대서 옆방의 ○○○ 선생님이 좀 시끄러웠을 것 같아 미안하다.

7시 45분에 출발해서 에베레스트 뷰 호텔이 있는 ‘쿰중’을 생략하고 ‘캉중마’를 향해 한참을 걸었다. 그것도 내리막길을. 나중에 다시 오를 생각을 하니 암담하다. 일단 중간에 공금으로 차를 마시면서 좀 쉬었다. 750루피 지출. 가이드의 이름은 ‘쿠마르’. 우리가 캡틴 쿠마르라고 부르기로 했다. 부가이드는 ‘람’, 막내 가이드는 ‘라크마’란다. 점심 후에는 2km를 기어올라 가야한단다. 거의 2시간의 강행군.

점심도 역시나 진수성찬이다. 수제비가 나왔다. 청양고추를 갈아서 식초에 섞은 소스를 타니까 맛이 더욱 훌륭했다. 그냥 수제비는 약간 밍밍. 이 곳의 음식은 짜지 않아서 다들 좋단다. 주방장을 불러서 다같이 박수를 쳐줬다. ○○○ 선생님께서 나중에 가이드 따로, 주방팀 따로, 포터팀 따로 팁을 주는 것이 좋겠다시며 나중에 협의해 보자신다. 상당히 인텔리이신 듯하다.

점심을 먹고 1시에 출발했다. 2km의 언덕길을 계속 오르고 또 올랐다. ○○○ 선생님이 걱정되었지만 천천히 끝까지 잘 따라 오셨다. 2시간 20분 정도 걸려서 도착한 곳은 티벳불교사원인 탱보체 사원. 이쪽 지명에 “체”가 많다. “체”의 뜻은 “발걸음”이란다. 부처의 걸음걸음마다 마을이 만들어진 것이란다. 산 꼭대기에 제법 넓은 사원이 자리잡고 있었으나, 다들 힘들어서 사원에 들어가 보지는 않았다. ○○○ 선생님이 온갖 간식을 많이 가져와서 쉴 때마다 한 보따리를 풀어 놓았다. 슈퍼마켓을 털어왔냐고 농담했다.

다시 동백숲 같은 길을 40여분 내려왔다. 자갈돌로 계단을 만들었는데, 흙길보다 훨씬 힘들었다. 그리고 기온도 많이 내려갔다. 다운 베스트와 방풍자켓을 입어야 그나마 견딜 만하다. 오늘 저녁엔 많이 추울 것 같다. 오늘 오후부터 살짝 머리가 아프다. 저녁때 두통약을 하나 먹어야겠다. 그리고 처음엔 왼쪽에서 시작했는데 나중엔 오른쪽 다리까지 허벅지 안쪽이 조금 아프다. 파스를 발라야지. 오늘이 겨우 5일째인데 벌써 힘들다. 사실 5일이라고 해도 본격적인 산행은 2-3일밖에 안되는데 말이다. 앞으로도 일주일은 고생할 것이다. 다행인 것은 오늘 저녁 메뉴는 닭백숙이라는 것이다.

이 곳 ‘디보체’의 숙소에서 ○○○ 선생님이 돈을 주고 와이파이를 구입했는데, 연결되었다고만 뜨고 사실 연결이 안된다신다. 내 에그가 잘못된 것이 아닌 것이다. 이젠 한국과의 연결을 완전히 끊고 지내는 수밖에 없다. 내일부터는 옷차림과 빨랫거리가 걱정이다. 전에 입었던 것을 다시 입어야할 상황이다. 나원참.

저녁식사때 나온 닭은 어마어마하게 컸다. 1인당 한 마리였는데, 히말라야 야생닭이라 그런지 크기가 장난이 아니었다. 속에 찹쌀까지 넣어서 맛이 제대로 난다. 닭껍질은 다 미리 벗겨냈고, 닭죽까지 만들어 내왔다. 사진을 못 찍은 것이 정말 아쉽다. 디저트는 사과튀김. ○○○, 양찬덕 선생님의 소주를 또 드시길래 캡틴 구마르에게 물어봤더니 괜찮다고 해서 나도 맥주 한캔을 700루피에 사서 가이드와 나눠 마셨다.

방(A4)으로 올라와 수건에 온수를 적셔서 샤워를 했다. 그런대로 괜찮은 듯하다. 다만 머리가 좀 아픈 것 때문에 걱정이 되어서 화콜 1알을 먹었다. 괜찮아져야 할텐데. 오늘의 롯지 DIRMIR는 완전히 숲 속에 있어서 많이 추울 것 같다. 게다가 저녁부터 비가 내린다. 체온 조절이 중요하단다. 후드티에 다운베스트를 입고, 털모자에 마스크까지 착용했다. 다만 아랫도리는 얇은 반바지만 입었다. 추우면 핫팩을 하나 써야겠다. 핫팩이 3개뿐이라 아껴야 하지만 추우면 어쩌겠는가, 일단 쓰고 봐야지. 오늘은 잘 잘 수 있을지 모르겠다.

 

10/9(일)

 

어제의 힘든 하루가 지났다. 매우 추울 줄 알았는데 비교적 생각보다 덜 추웠다. 세겹으로 껴입고 자다가 결국 하나씩 벗고 자게 되었다. 8시쯤 잠깐 잠들었다가 깨어서 격몽요결을 조금 읽다가 9시쯤 다시 취침. 중간에 2번 깨어서 화장실에 다녀왔고 결국 5시에 완전히 일어났다. 짐을 싸고 물없는 샴푸로 머리를 감았다.

5시반에 나와보니 몇몇 분들도 나와서 사진을 찍고 계셨다. 어제 본 꽁데, 꿈빌라, 다보체, 로체, 그리고 아마다블람. 3대 미봉 중의 하나라는 아마다블람은 구름에 가려 잘 보이지 않았다. 앞으로 더 많이 보이겠지. 이곳 롯지에서 일하는 친구가 오늘 날씨가 좋다며 우리보고 행운이란다. 네팔사람같지 않고 일본사람 비슷하게 생겼고, 영어도 아주 능숙하다. 아침엔 ○○○, ○○○ 선생님에게 샴푸를 빌려줬다. ○○○ 선생님이 개운하다며 아주 좋아하셨다. ○○○ 선생님은 어제 와이파이를 구매했는데 작동이 안된다며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보고 있다. 카트만두에서 이 곳의 유심칩까지 샀다는데 말이다.

나도 오늘부터는 류진석 교수님이 주신 털모자를 쓰고 다닐까 한다. 머리가 아픈 것이 머리를 제대로 보온하지 않아서인 것 같기도 하다.

아침을 먹고 출발. 계속 사진을 찍느라 속도가 안난다. 가면 갈수록 전경이 좋아지니까 계속 사진을 찍게 된다. 산과 계곡, 폭포가 장관이다. 특히 아마다블람은 보면 볼수록, 가까워질수록 멋있어진다.

4,000m 위에서는 밀크티보다는 레몬티가 좋단다. 밀크티는 속이 울렁거린단다. 말을 조금만 길게 하거나, 사진을 찍느라 2초만 숨을 멈추어도 호흡이 가빠진다. 의식적으로 숨을 쉬어야 한다는 것이 신기하다.

중간에 레몬티를 마시며, 그 집에서 직접 구웠다는 쿠키도 사먹었다. 쿠키값이 제법 비싸다. 2,350루피. 한화로 23,500원 정도. 결국 공금이 바닥나서 1,000루피씩 다시 갹출했다.

4시쯤 숙소인 ‘페리체’에 도착했다. 역시 4,000m를 넘어서니 정말 힘들다. 기침할 때마다 머리가 욱신거린다. 숨쉬기도 힘들다. 박자 맞춰 숨을 쉬지 않으면 몇 초간 가쁜 숨을 몰아 쉬어야 한다. 일단 숙소에 도착한 후에 마늘 스프를 먹었다. 고산병에 좋단다. 3그릇이나 마셨다. 닭국물에 다진마늘을 넣은 것이다. 가이드에게 머리가 아프다니까 1시간 정도 더 기다려보고 그래도 아프면 그 때 두통약을 먹으란다. 4시반에 다시 집합해서 고소에 대한 적응 겸 100m만 올라가 본단다. 좀 걱정되지만 할 수 없지 머.

머리는 뻐개지게 아프고 숨은 차고, 죽을 지경이다. 100m라더니 2-300m는 올라간 것 같다. 내려와서 저녁을 먹으려는데 계속 상태가 안 좋았다. 그래도 일단 식사는 푸짐하게 먹었다. 된장찌개, 잡채, 더덕장아찌 등등. 그리고 어제부터 나오던 누릉밥도 안 먹다가 오늘은 좀 먹었다. 그래도 역시 뜨거운 것이 들어가니까 좀 나은 듯하다. ○○○ 선생님도 상태가 썩 좋은 것 같지는 않았고, ○○○ 선생님도 식사를 잘 못하셨단다. 오히려 ○○○ 선생님이 제일 팔팔하신 듯하다. 커다란 다이닝 룸에 세계 각국의 사람들이 모여서 왁자지껄하다. 우리 팀 식사의 반찬으로 나온 김치와 깍두기 냄새가 좀 거슬리는 듯했다. 또 일부 외국인은 호스로 산소를 들이마시기도 했다(나중에 알고보니 산소가 아니라 물이었다). 나도 좀 필요할 듯하다.

숙소를 정하는데 ○○○ 선생님이 독방을 쓰고 싶어 하시는데, 남는 방이 없단다. 결국 내가 싱글차지를 냈음에도 불구하고 ○○○ 선생님과 같이 방을 쓰기로 했다. ○○○ 선생님은 둘쨋날 같이 잔 분이다. 어제는 마침 옆 방에서 주무셨는데, 코를 제법 많이 고셨다. 그래서 브리드라이트를 하나 드렸다. 숙소에 와서 빨랫거리를 챙겼다. 내일은 “나가중” 봉우리에 갔다가 되돌아올 것이기 때문에, 이곳에 머무는 조리팀에게 맡기고 돈을 좀 주면 될 것이라고 캡틴이 얘기해줬다. 그리고 방에 와서 결국 신경외과에서 처방받은 두통약을 먹었다. 좀 나아지는 듯한데, 더 안좋아지면 다이막스를 먹어야겠다. 내일이 고산병의 고비인 것 같다. 나를 포함해서 다들 괜찮아야 할텐데 걱정이다.

등정기의 후기를 미리 써봤다. “정말 히말라야 트레킹은 할 짓이 못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리워지는 것은 왜일까?” 정말 이렇게 될까?

7시 35분인데 슬슬 잠자리에 들고 있다. 내일은 새벽 5시부터 준비를 하란다.

오늘 오후에 올라오면서 마을 곳곳에 야크똥을 붙여서 말리는 것을 봤다. 동그랗게 보이차를 숙성시키듯이 반죽을 해서 돌벽에도, 바위에도 붙이고 마른 것은 거의 1m 높이로 쌓아두었다. 올겨울을 기다리는 월동준비 장작이겠지. 어쩐지 길거리에 똥이 많았지만 산더미처럼 쌓이지 않은 것은 이렇게 걷어갔기 때문일 것이다. 더 올라오면서 보니, 빙하가 흘러내린 흔적이 있었다. 마치 산사태가 난 것처럼 하얀 색의 돌과 흙이 파여있었다. 빙하가 흘러간 자취이겠지.

내일 입을 옷을 정리하고 취침준비를 했는데, 아직도 8시가 안되었다. 그래도 자야겠지. 부디 내일은 날씨도 맑고 컨디션도 좋기를 바라야지. 7시쯤에 엄청나게 쏟아지던 빗줄기가 이젠 잦아들고 있다. 계속 밤에는 비가 억수같이 내리다가 아침만 되면 하늘이 개는 행운을 누려왔는데, 내일도 그런 행운이 오겠지.

 

10/10(월)

 

어젯밤 12시에 일어나서 왔다리 갔다리했다. 3시쯤 다시 깨었는데 두통약의 약발이 떨어져서 머리가 아프길래, 다이막스 반알을 먹었다. 그리고 또 자는 둥 마는 둥. 결국 5시에 일어나서 짐정리를 했다. 오늘은 5,000m쯤 고소적응만 하고 니려온단다. 어제 오후에 새로산 덕다운 파카를 입고 갔다가 너무 더웠기 때문에 그냥 어제 오전과 같은 복장으로 가기로 했다.

아침식사는 여전히 맛있다. 누릉밥도 먹고 비타민과 마그네슘, 그리고 두통약을 먹었다. 별 일 없기를 바라야지. “나가르중”의 제2봉 4,850m까지 올라간단다.

7시 45분에 출발했다. 바람이 많이 불었고 거의 직각에 가까운 언덕을 오르니까 기온차도, 기압차도 급격해서 정말 고생했다. 수시로 쉴 때마다 기온에 맞춰 옷과 장갑을 바꿔야했다. 숙소인 4,200m에서 나가르중의 제2봉인 4,850m까지 올라갔다. 다들 완전히 녹초. 그 와중에 윤찬덕 선생님은 가이드와 3,995m인 나가르중 정상까지 다녀오셨다. 대단한 체력! 나가르중을 올라가는 각도가 거의 60도라고 생각했는데, ○○○ 선생님께서 40도 정도란다. ○○○ 선생님은 대덕연구단지의 한국전력연구원에서 평생 근무하셨단다. 천천히 그러나 꾸준하게 걸으신다. 계속 어려울 것 같다고 말씀은 하시지만 아마도 끝까지 함께 하실 것 같다. 4,850m에서 담배를 한 대 피우려고 했는데, 불이 잘 붙지 않았다. 거센 바람도 바람이지만, 불 붙이는 2-3초 동안 담배를 빠는 힘이 없어서 인 것 같다. ○○○ 선생님은 고소공포증이 있다며 내려갈 때 누군가가 잡아달라고 했지만, 그런대로 잘 내려왔다. 나는 출발한 지 30분 정도 되었을 때, 아랫배에 신호가 와서 변을 볼 자리를 찾느라 고생했다. 결국 4,300m쯤의 나무들 사이에서 바지를 까고 볼 일을 봤다. 좀 민망하고 미안했다.

1시반쯤 내려와서 삶은 달걀과 튀긴 감자를 먹고 바로 점심식사. 라면과 볶음밥, 그리고 누릉밥이었다. 아마도 힘든 훈련을 하고 와서 입맛이 없을까봐 라면을 준비한 것 같다. 정말 대단한 서빙마인드이다. 아침에 맡겼던 빨래도 받았다. 가이드의 조언에 따라 500루피를 줬다. 그래도 빨래를 해서 아주 개운하다. 이 곳 페리체의 숙소인 Pumori에는 미국인, 독일인 등이 많다. 오늘은 오후에 중국인 단체가 들어왔다.

점심식사때 캡틴 쿠마르가 나보고 독방을 쓰겠냐고 해서 그냥 어제처럼 ○○○ 선생님과 쓰겠다고 했는데, ○○○ 선생님한테 얘기하니까, 내가 짐 때문에 불편해하는 것 같다고 하셔서, 결국 독방을 쓰기로 했다. 사실 그냥 방 하나 절약하면 혜초든, 가이드든 이익이 갈 것 같아서 그렇게 하려고 했는데 말이다. 어제 ○○○ 선생님과 같이 잔 방은 산쪽이었고, 오늘 얻은 방은 들쪽이다. 오후에 햇볕이 잠깐 들길래 이것저것 좀 널어놓았다. 그런데 들쪽이 더 춥단다. 오늘밤에 정말 잘 자야할텐데 걱정이다.

4시엔 또 식당에서 티타임이다. 계속 먹는다. 누가 보면 히말라야 트레킹이 아니라 식도락여행을 다녀올 것으로 착각할 수도 있겠다. 4시에 내려갔더니 사람이 별로 없었다. 5시로 착각한 사람도 있고, 피곤해서 낮잠을 주무신 분도 있었다. 가뜩이나 밤에 잠을 잘 못잔다는데 낮잠까지 자면 밤에 힘드실텐데. ○○○ 선생님을 포함해서 많은 분들이 밤에 잠을 자다가 숨이 막혀서 잠을 깬단다. 산소 부족으로 인해 우리가 일상적으로 호흡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단다. 고지대에 와서 느낀 것 중의 하나는 의식적으로 숨을 쉬어줘야 한다는 것이다. 무의식적인 자연스러운 호흡으로는 산소를 충분히 흡입하지 못하는 것이다. 평소에 의식 안하고 살던 것들이 하나하나 의미를 가지게 된다.

저녁 메뉴는 닭개장과 네팔스파게티, 앞 자리의 ○○○ 선생님은 컨디션이 안 좋은지 식사를 별로 안하셨고, 식사 후에는 바로 올라가셨다. 다들 오늘의 강훈에 녹초가 되었다. 그런데 ○○○ 선생님의 말씀으로는 혜초가 다년간의 경험으로 인하여 고객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들로 프로그램을 편성했다는 것이다. 고소적응훈련을 통해 모든 사람이 목표한 EBC등반을 이룰 수 있게 해준다는 것이다.

저녁 식사 후에 가이드와 얘기를 해보니, 고객이 입금하고 현지 트레킹을 하고 나서 3개월이 지나서야 가이드 보수가 입금된단다. 물론 현지 고용인한테는 바로 지급되지만 혜초직원은 3개월 후에 지급된단다. 가이드가 총 10명, 조리사도 총 10명이나 되는 작지 않은 회사인데 말이다. 네팔에서 롯지 사업을 하려면 돈이 많이 필요하단다. 건축자재를 모두 헬기로 날라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롯지 사장은 대부분 미국에서 호화판 생활을 하면서 롯지를 현지인에게 임대한단다. 안나푸르나에서는 롯지당 방이 6개 이하로 제한되지만, 에베레스트 쪽은 150개까지도 가능하단다. 어디나 빈부격차가 있게 마련이다. 티타임때 ○○○ 선생님과 ○○○ 선생님은 계속 골프 얘기를 했단다. 공통관심사. ○○○ 선생님은 지난 8월에 불화를 배우다가 무릎인대가 늘어났단다. 이것저것 많이도 하셨다.

시간은 아직도 7시 20분이다. 나원참. 무엇을 하지? 사실 꼭 무엇을 할 필요도 없는데 말이다.

 

10/11(화)

 

오늘은 5시반 기상, 6시반 식사, 7시반 출발이었다. 엊저녁엔 비교적 잘 잤다. 8시 취침, 12시 기상, 화장실에 갔다가 다시 자고 4시쯤 완전히 기상. 비몽사몽 속에 5시반까지 대기했다. 아침식사는 역시나 푸짐하게 먹었다. 7시반에 출발해서 1시간 넘게 평지를 걸었다. 12시가 되기 전에 고개를 넘어야 한단다. 12시부터 바람이 많이 불기 때문에 그 전에 넘기 위해서 조금 일찍 출발했다.

아침에 마당에 나와보니 아마다블람을 비롯한 설산들이 또 멋있는 자태를 보인다. 사진을 찍어도 몇 분 후이면 더 멋있는 모습이 나타나서, 언제 찍어야 할지 모르겠다.

다들 오늘의 컨디션은 괜찮은 듯하다. 평원을 걸었지만 햇볕에 따라서 몇 분 사이에도 여름과 겨울을 왔다리 갔다리 한다. 가방에 4계절 옷, 모자, 장갑 등을 넣고 다녀야 한다. 계속 갈아입어야 하니까, 카고백에 넣을 수도 없다. 조금 춥거나 조금 더워도 참아야 한다. 춥고 더울 때마다 옷을 갈아입는 것이 체온유지에 가장 좋지만, 그렇게 되면 하루에도 수십번씩 갈아입어야 할 것이다.

여기는 4620m ‘툭라’ 롯지이다. 평원을 한참 걷고 나서 제법 험한 고개를 넘어서 도착했다. 시간은 10시반. 삶은 달걀, 감자, 홍차 등으로 간식. 달걀은 맛있는데 감자는 별로 맛이 없었다. 다들 어느 정도 적응되었는지 쳐지는 사람이 별로 없다. 다들 간식을 하나둘씩 꺼내 놓는다. 어차피 본인이 먹을 것보다 조금씩 더 가져온 것 같다. 나는 이미 가져온 여분의 껌까지 다 나눠줬다. 오늘 아침의 껌이 마지막이었다. 아침에 잇몸이 부어서 좀 아팠는데, 한두시간 열심히 껌을 씹으니까 비로소 좀 괜찮아졌다.

인도사람 3명이 우리 팀과 계속 앞서거니 뒤서거니 가고 있다. 그 중 키가 큰 한명은 우리 멤버와 자주 대화를 나누고 있다. 58살이란다.

○○○ 선생님이 아디다스 야구모자를 막내 가이드 락마에게 선물로 줬더니 아주 좋아한다. ○○○ 선생님께서 영화배우 같다고까지 하셔서 더욱 좋아하는 것 같다.

이곳 롯지에서 푹 쉬고 11시에 출발, 1시반쯤 목적지인 로부제(4,910m)에 도착할 예정이다. 이 곳에서 화장실에 들렀는데, 얇은 양철판으로 만들어져서 그런지 바람이 불 때마다 흔들거려서 볼 일을 보기 어려울 정도이다.

또다시 강행군. 정말 힘들다. 한참을 올라갔는데 위에서 우리 주방팀이 레몬차와 컵을 들고 온다. 나중에 올라가보니 무려 30분 거리를 거슬러서 차를 끓여 내려온 것이다. 주방팀 파이팅! 차를 한잔 마시니 힘이 좀 나서 다시 시작. ○○○ 선생님께서는 아예 휴식없이 계속 걷겠다고 먼저 올라가셨다. 또다시 한참을 걸어서 드디어 4,910m의 로부제에 도착했다. 시간은 오후 2시.

또다시 푸짐한 식사. 중국식 볶음밥이다. 케찹까지 준비되어 있다. ○○○ 선생님이 입맛이 없다며 덜어놓으신 것까지 다 먹었다. ○○○ 선생님은 컨디션이 안 좋은 것 같다. 머리가 아프지는 않단다.

점심식사후에 방배정을 하고 짐을 풀어놓은 뒤에, 3시반에 모여서 3-40분간 고도적응훈련차 70-100m 정도 올라갔다가 내려올 예정이란다. 나는 또다시 머리가 아프지만 고도적응훈련을 해보고 그래도 아프면 두통약을 먹으려 한다.

오늘의 롯지(Oxigen)는 제법 괜찮다. 탁자, 거울, 쓰레기통이 방마다 다 있다. 침대도 제법 그럴 듯하다. 호피무늬 담요를 깔아놓았다. 기분만큼 컨디션도 좋아야 할텐데.

롯지의 개 한 마리가 우리 식탁 밑에 아예 드러누웠다. 마치 자기 집이라는 것을 손님인 우리에게 과시하는 듯하다. 이 곳에서도 텃새라니. 그것도 개한테 텃새를 당할 줄은 몰랐다.

차 한잔 마시고 다같이 고도적응훈련을 했다. 다만 ○○○ 선생님만 컨디션 난조로 숙소에 남았다. 머리가 아프지는 않은데 몸이 춥단다. 다른 사람은 훈련에 참여했다. 70-100m라고 해서 간단하고 짧고 쉬울 줄 알았다. 3-40분이라더니 거의 50분이나 걸렸다. 역시나 힘들다. 특히 머리도 아프고 박자에 맞추어 숨을 쉬기가 힘들다.

4시반쯤 돌아와서 또다시 마늘스프와 팝콘을 먹었다. 마늘스프가 고산병에 좋다고는 들었지만 팝콘도 고산병에 좋단다. 잠시 쉬었다가 5시반부터 저녁식사. 롯지에 사람이 많아서 빨리 먹고 자리를 비켜주어야 한단다. 저녁메뉴는 부대찌개. 정말 얼큰하니 몸이 풀렸다. 아마도 미역국이었다면 못 먹었으리라. 6시쯤 내일 일정을 듣고 해산했다. 내일은 7시반에 출발해서 고랍섹에 가서 점심을 먹고 오후에 날씨가 좋으면 칼라파트라(날씨가 안좋으면 EBC)에 갔다가 5시반쯤 고랍섹으로 복귀하는 일정이란다.

내가 머리가 아프다니까 고맙게도 다들 걱정해주신다. 저녁식사때 물어보니 우리 스텝은 식당 바닥에서 잔단다. 어차피 내 방에 침대 하나가 남으니까 캡틴한테 와서 자라고 했다. 조금은 불편하겠지만 그게 무슨 대수랴. 돈이 없다는 이유로 사람들이 괄시받지 않았으면 좋겠다.

저녁식사후에 방에 들어와서 수건샤워를 하고 물없는 샴푸를 했다. 그리고 두통약을 먹었다. 이젠 잇몸도 많이 부어서 아프다. 계속 껌을 씹어야 가라앉을텐데, 가져온 껌이 너무 일찍 동이 났다. 내일부터는 얻어 씹어야할 형편이다. 나눠 먹는 것도 좋지만 내 것을 좀 미리 챙겨두어야겠다. 캡틴은 스텝들과 식사하고 정리한 후에 9시쯤 들어올 것 같다. 그 때까지는 잠을 자지 말고 버텨야할텐데, 아직 7시 40분이다. 무려 1시간 20분이나 남았다.

저녁식사 후에 담배를 피러 나갔더니 양찬덕 선생님이 계셔서 다음에 또다시 오실 것이냐고 여쭈었더니 안온다신다. 같은 곳은 두 번 다시 안간다신다. 세상에 얼마나 갈 곳이 많은데 굳이 같은 곳을 두 번 가냐고 하셨다. 나는 과연 얼마나 많은 곳을 다녀볼까? 왜 이런 고생을 사서 하는 것일까? 이번 여행이 끝나고 나면 고생한 만큼 보람도 있고 행복해질까? 일단 예상답안은 “글쎄올시다”이다. 일단 경치도 좋고 사람들도 좋지만, 과연 이 곳에서 느끼는 것을 국내에서는 절대 느끼지 못하는 것일까? 국내에서도 느껴보지 못한 경험이 많은데, 국내의 경험만으로도 차고 넘치는데 굳이 외국에서 이런 경험을 해야하는 것일까? 그냥 EBC에 와봤다고 다른 사람들 앞에서 자랑스럽게 뻐기는 것 외에 어떤 의미가 있을까? 이번 여행에서 무엇인가를 깨달았으면 좋겠다. 그 깨달음을 통해 앞으로의 내 삶이 더욱 행복해지고 여유로와지고 편안해졌으면 좋겠다. 일단 깨달은 한가지는, 이 곳의 돈없는 사람들이 고생하는 것을 보면서 없는 사람들에 대한 죄책감과 책임감을 느끼긴 했다. 내가 나쁜 짓을 해서 잘 먹고 잘 사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내가 먹고사는 것의 대부분이 없는 사람들 덕분이라는 것에 대해 고마움과 미안함을 가져야겠다. 네팔인이든, 한국인이든.

이번 여행에서 또하나 아쉬운 점은 음식이 너무 푸짐하고, 현지 음식을 거의 못 먹었다는 점이다. 네팔에 왔으면 네팔음식도 먹어야 하는데, 매일 푸짐하게 한식을 먹고 있다. 물론 잘 먹으니까 힘도 나겠지만 좀 촌스럽다는 생각도 든다. 마치 시골귀족이 수많은 하인들을 데리고 다니면서 온갖 자기네 음식을 먹고 다니는 듯한 촌스러움. 우리는 네팔의 절반밖에는 경험을 못하는 것이다. 물론 롯지의 음식이 입에 잘 맞지 않을 수도 있고, 양도 매우 적단다. 그래도 하루에 한끼 정도는 현지음식을 먹어봐야 네팔에 다녀왔다고 얘기할 수 있지 않을까? 우리는 네팔이 아니라 EBC에만 다녀온 것이다. 반쪽짜리 여행이 되어 버렸다. 여행이 아니라 트레킹이어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네팔을 경험하고 느끼는데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고, 오로지 EBC에 가서 증명사진 한방 찍으려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에.

 

10/12(수)

 

4시반에 잠을 깼다. 머리도 아프고 호흡도 어렵다. 캡틴은 끝내 내방에 오지 않았다. 5시반에 모닝콜과 함께온 꿀차를 마시고 나와보니 스텝들과 함께 식당에서 자고 있었다. 그리고 우리 팀원들이 한분씩 나오는데 공통된 말씀은 한숨도 못잤다는 것이다. ○○○ 선생님은 유럽 최고봉(몽블랑이 아니라 러시아에 있는 5,642m의 엘브루스란다)과 안나푸르나에도 갔었고, 이 곳이 세 번째 고산트레킹이라신다. 밖에 나와보니 역시나 춥다. 30년만에 아랫도리 내복(기모 레깅스)를 입었다. 그래도 날씨는 걱정되지 않는다. 불면과 두통이 걱정될 뿐이다.

드디어 녹다운되었다. 로부제에서 아침을 먹고 출발해서 강행군 끝에 점심이 조금 지난 시간에 간신히 고락셉에 도착했다. 중간에 차 한잔 마시고 강행군. 정말 힘들었다. 고락셉에서 카레라이스로 점심을 해결하고 잠시 쉬었다가 1시반쯤 출발해서 칼라파트라에 도전했다. 쉬워보이는 언덕이었는데, 비슷한 언덕을 4개나 넘어서야 도착했다. 바람이 엄청났다. 출발할 때에는 따뜻했기 때문에 다운 베스트에 방풍자켓만 입었는데, 3번째 언덕을 넘을 때쯤엔 찬 바람이 엄청나게 불어서 체감기온이 10도 이상 낮아진 것같다. 막판 정상을 앞두고는 거의 탈진상태였지만 정신력으로 올라갔다. ○○○ 선생님은 결국 중도 포기. 정상에서는 엄청난 강풍 때문에 도저히 서 있을 수도 없어서 단체 사진은 엄두에도 못내고 차례차례 올라가자마자 사진만 찍고 바로 내려왔다. 내려오는 길조차 만만치 않았다. 숨쉬기가 어려워서 내려오는 도중에도 10걸음마다 한번씩 심호흡을 해야했다. 올라갈 때에는 한두걸음마다 심호흡이었다. 올라갈 때 힘들어 하시던 ○○○ 선생님이나 ○○○ 선생님도 내려갈 때에는 미끌어지듯 내려갔다. 왜 나만 이렇게 빌빌거릴까. 결국 내려와서 다들 저녁식사를 하시는데 나는 도저히 앉아있기 힘들어서 바로 숙소에 들어와서 쉬어야했다.

 

 

10/13(목)

 

어젯밤에 다행스럽게도 잠은 잘 잤다. 두통약과 감기약을 먹고 핫팩 2개를 끼고 잤는데, 이번 여행 중에서 제일 잘 잔 것 같다. 물론 중간에 몇 번 깼지만 그래도 괜찮았다. 아침 6시에 결국 ○○○ 선생님한테 다이막스 한 알을 얻어 먹었다. 숙면 덕인지 약 덕인지 아침 컨디션은 괜찮은 편이다.

새벽 4시에 양찬덕, ○○○, ○○○ 선생님은 기어이 EBC에 가셨단다(나중에 알고보니 ○○○ 선생님은 EBC까지 가지는 않고 근처에서 사진을 찍었다고 한다). 대단한 분들이다. 올라가신 분들을 기다리느라 오늘 아침식사는 8시란다. 가이드가 아침 7시에 역시 또 따뜻한 차를 갖다준다. 마시고 나와서 주변의 산을 구경했다. 구름에 살짝 걸쳐서 꼭대기만 조금 보이는 에베레스트 정상. 나원참, 저걸 보려고 여기까지 왔나? 칼라파트라를 정복하려고 왔나? EBC에 도장을 찍으러 왔나? 이유는 나중에 생각하자.

아침을 먹고 출발해서 강행군으로 내려왔다. 올라갈 때에는 로부제를 거쳐서 고랍섹까지 갔는데, 내려올 때에는 고랍섹에서 바로 페리체까지 왔다. 정말 힘들었지만 그래도 내리막이라서 괜찮고 가능했다. 점심은 로부제에서 라면에 밥을 말아 먹었다. 그리고 12시 45분에 출발해서 4시에 4,200m의 페리체에 도착했다. 중간중간에 사진을 찍느라 뒤쳐진 ○○○ 선생님 때문에 말들이 많았다. 많이 뒤쳐졌지만 그냥 따라오겠거니 하고 그냥 왔다. 올라갈 때 뒤처지는 것은 힘들어서 그런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그게 아니었던 것이다.

제주도 출신인 ○○○ 선생님은 우체국에서 정년퇴직하시고 이제는 봉사활동을 하고 싶다신다. 돌아가면 코이카 같은 곳을 알아보겠다신다. 그리고 양찬덕 선생님은 배가 아픈 상태에서 새벽에 EBC까지 다녀오시더니 결국 매우 안좋은 상태가 되었다. 노루모를 드렸지만 많이 안좋으신 것 같다. 말이나 헬기 등을 통해서 내려가는 방법과 비용을 캡틴에게 물어보셨단다. 그리고 EBC에 가서 왜 아무 것도 안보이냐고 짜증을 내셨단다. 캡틴은 “나도 왜 그런지 모르겠다”고 답했단다. 우문현답.

저녁 메뉴는 만둣국에 만두튀김, 그리고 참치채소튀김이었다. 나는 역시 2그릇을 먹었다. 양찬덕 선생님은 속이 안좋다며 국물만 드셨다. 나중에 여쭤봤더니 고산증세이니까 내려가면 괜찮아질 것이라고 하셨다. 제발 그렇게 되기를 바란다. 식사를 마치고 ○○○ 선생님과 ○○○ 선생님과 남아서 맥주를 한잔했다. ○○○ 선생님은 식사 중에 소주를 좀 드셨다며 맥주는 1잔만 드셨다. 가이드 람에게도 한잔을 권하고, 나머지는 내가 다 마셨다. 500cc캔 하나에 750루피. 그리 싸지는 않다. 이제 남은 돈도 별로 없다. 내일 남체에서도 한잔할 것 같다. ○○○ 선생님은 속이 좋지 않다며 식사를 안하시고 과일만 드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맥주를 먹는 나를 위해 견과류와 오징어를 갖다 주셨다.

다들 이번 여행에서 무슨 의미를 찾을까. 그건 아마도 이번 여행을 왜 신청했느냐에 달려있겠지. 솔직히 EBC는 ABC에 비해 볼 것도 별로 없다고 알려져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EBC를 신청한 이유는 첫째, 이미 ABC를 다녀왔는데 좋아서 비슷한 경험을 다시 하고 싶었거나, 둘째, 어차피 한번 하는 것이니까 가장 높은 EBC를 선택했거나, 셋째, 이 곳이 좋다는 누군가의 감언이설에 빠졌거나 일 것으로 생각된다. 첫째는 장엄한 자연경관에 매료된 사람으로 멋진 풍광을 느끼는 것에서 의미를 찾을 것이고, 둘째는 차츰 잃어가는 자심감을 되찾고 삶의 의미를 찾으려는 사람일 것이고, 셋째는 첫째와 유사하게 자연을 찾는 사람이거나 둘째처럼 자신을 잃어가고 있을 때 주변의 권유로 온 사람이겠지. 나는 물론 둘째이다.

그나저나 오른쪽 윗 잇몸이 아프다. 껌을 씹어야 하는데 다 나눠주고 남은 것이 없다. 앞으로 워터픽을 어떤 여행이든 꼭 가지고 다녀야겠다. 잇몸이 아프니까 음식을 제대로 먹기가 힘들다. 계속 국에 말아서 마시고 있다. 내일부터는 껌이라도 열심히 얻어서 씹어야겠다.

내일은 5시 기상, 6시 식사, 7시 출발이다. 올라갈 땐 디보체를 거쳐서 이틀에 갔는데, 내려갈 땐 디보체를 거치지 않고 바로 남체로 간단다. 10-11시간이나 소요될 예정이다.

오늘 고락셉에서 내려오다가 약 5,000m 지점에서 빙하가 녹아서 흘러내리는 계곡을 발견하고, 물을 한통 담았다. 나중에 조금씩 나눠주려고 했는데, 점심때 물어보니 반응이 시원치 않아서 어떻게 할지 모르겠다.

캡틴에게 고락셉에서 하루 자고 아침에 좋은 컨디션으로 칼라파트라에 오르는 것이, 로부체에서 고락셉에 가자마자 칼라파트라에 가는 것보다 좋지 않겠냐고 했더니, 고락셉에서 자면 기압 때문에 잠을 설쳐서 다음날 칼라파트라에 가기가 더 힘들다고 했다. 모든 일정마다 그 의미와 이유가 있겠지만, 내 경우에는 고락셉에서의 수면이 정말 숙면이 되어서 좋았다. 자고 일어나서 칼라파트라에 갔으면 좀 덜 힘들었을 것이다. 아니면 칼라파트라에 다녀와서 힘들어서 숙면을 취하게 된 것일까?

 

10/14(금)

 

어제 페리체의 숙소(올라갈 때 묵었던 Hotel Pumori)에 와서 잤다. 8시쯤부터 잤는데 12시쯤 딱 한번 깨서 화장실에 다녀왔을 뿐 4시까지 푹 잤다. 화장실 옆방이라서 사람들 드나드는 소리가 시끄러워서 휴지로 귀를 막고 잤다. 4시에 다시 잠들어서 4시 45분에 완전히 기상했다. 차 한잔 마시고 나와서 담배 한 대를 피우는데, 하늘에 별이 엄청 많았다. 예전에 88팀 친구들과 설악산에 갔을 때 봤던 것과 비슷했다. 핸폰으로 찍었지만 잘 안나올 것 같다. 마음으로 찍어두어야지.

드디어 남체에 도착했다. 아침 5시에 기상해서, 7시에 페리체를 출발했다. 정말 힘들었다. 내리막만 있는게 아니라서. 게다가 이틀 올라간 거리를 하루에 내려오려니 죽을 맛이었다. 점심은 맛있는 수제비. 부추무침을 넣어 먹으니 제 맛이 났다. 오후에도 강행군. 떠오르는 구름을 헤치고 달리다시피 하여 4시반에 드디어 남체에 도착했다. 이 곳에 오니 갑자기 푸근하게 느껴진다.

네팔의 인사말인 “나마스테” 뒤에 “순도리”를 붙이니 beautiful이란다. “순돌”은 handsome. 오전에 페리체의 숙소에서 “순도리”가 예쁘다는 말이라는 것을 배워서, 내려오면서 계속 써먹었더니, 다들 수줍어 하면서도 좋아했다.

점심 때엔 ○○○ 선생님의 애달픈 사연을 들었다. 돈이 없어서 집에 있는 쌀과 김치만 들고 사모님과 백두대간을 시작하셨단다.

 

10/15(토)

 

남체에서의 하루가 밝았다. 엊저녁에는 저녁식사로 나온 소불고기를 안주삼아 질펀한 술판이 벌어졌다. 시작은 ○○○ 선생님과 나였다. 한잔만 하겠다시던 ○○○ 선생님이 한모금 드시더니 맛이 좋다고 합류, 속이 안좋다던 ○○○ 선생님도 합류, 결국 모두 함께 했다. ○○○ 선생님이 맥주를 사시고 ○○○ 선생님이 와인까지 사셔서 푸짐한 상이 마련되었다. 술을 못한다는 ○○○ 선생님도 끝까지 앉아있었고, 속이 더부룩해서 밖에서 피자를 먹고 오신 ○○○ 선생님도 합류해서 9시까지 먹고 마셨다. 밤에는 비교적 잘 잤다. 코고는 바람에 조금 설쳤지만. 그리고 엊저녁엔 혜초쇼핑을 했다. 교수휴게실에 기증할 커피 3봉지(40$)와 엄마 드릴 꿀 한통(20$)을 주문했다.

오늘도 하루가 기대된다. 이젠 갈아입을 옷이 별로 없어서 레깅스에 반바지를 입었다. 좀 어색하지만 ○○○ 선생님의 패션이라서 낯설지는 않다. 아침에 사쿠라롯지의 현관에서 ○○○ 선생님과 담소. 방배역 옆에 있는 백석대학교 대학원에서 신학을 공부했단다. 동기들은 다들 목회활동을 하지만 본인은 거짓말을 못해서 포기했단다. 목회활동을 하려면 사기를 잘 쳐야한다길래 웃었다. 그리고 어제 저녁에는 네팔 사람과 담배를 피우다가 갑자기 네팔 담배가 피우고 싶어서 2개비를 주고 1개비를 얻어 피웠다. 무려 12mg. 역시 독했다. 오늘 아침에도 만나서 한 대를 바꿔 피우고 기념으로 또 한 대를 바꿔왔다.

아침에 류진석 교수님이 주신 털모자를 가이드 쿠마르에게 줬다. 나도 선물로 받은 것이라 조금 꺼려졌지만, 나보다 더 필요한 사람에게 가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람에게는 스키장갑, 라크마에게는 귀덮개를 줬다. 잘 쓰길 바란다.

어제 묵었던 사쿠라롯지는 일본인이 사장은 아니지만 친한 일본인이 자본을 대서 만들었단다. 그곳에서도 각종 기념품을 팔았지만 일본인을 도와주는 것 같아서 사지 않았다. 물론 카트만두가 더 싸다는 이유도 있었다.

아침에 남체에서 출발해서 시장거리를 조금 돌아서 내려왔다. 좌판에 각종 물건들을 늘어놓고 파는 것이 우리나라 등산로 입구같다.

남체에서 조금 내려오니 에베레스트가 잘 보인다는 지점이 있었다. 다들 사진을 찍느라 난리였다. 그러나 위에서 보던 것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아침에 화장실에 2번이나 갔는데도 휴식장소에서 또 신호가 와서 ○○○ 선생님에게 휴지를 빌려서 화장실에 가야했다.

중간의 check point에서는 ○○○ 선생님이 갑자기 숨을 못쉬며 협압이 내려갔다고 해서 다들 초긴장. 다행히 잠시후 회복이 되어서 출발했다.

무려 3시간을 걸어 내려와서 점심식사를 했다. 매콤한 비빔국수. 거기서 레깅스를 벗은 것이 화근이었다. 좀 갑갑해도 입고 있어야 했는데 말이다. 점심식사장소는 올라갈 때에도 들린 곳인데, 라틴어, 영어, 일본어 등으로 세계인류의 평화라고 써 있는 말뚝이 있었다. 알고보니 세계 곳곳에 일본이 돈을 내서 그런 말뚝을 박아 놓았단다. 점심 먹고 담소. ○○○ 선생님은 골프선수 생활을 접은 다음엔 그냥 취미생활로 소일한단다. 등산, 탁구 등등. 그런데 히말라야까지 오다니 대단하다. ○○○ 선생님은 김찬삼 교수의 “먼나라 이웃나라”를 보고 따라 하고 싶어서 세계 여기저기를 다녔단다. 패키지 여행은 단 한번이고, 대부분 혼자서 자유여행을 갔단다. 그리고 1월말에는 대만에 간단다. 자연환경보다는 박물과 같은 곳에 관심이 많단다. 아는 스님이 말하기를 역마살이 꼈다고 했다나. 카트만두에서는 그림 그리는 돌가루를 사려고 한단다. 그럼 돈은 누가 벌지? 남편이 이렇게 돌아다닌 것을 흔쾌히 수락하나?

점심 먹고 다시 2시간반을 걸어서 이 곳 팍딩에 도착했다. 올라갈 때 묵었던 곳이다. 4시가 티타임이어서 내려갔더니 ○○○, ○○○, ○○○, ○○○ 선생님과 나만 나와 있었다. 컨디션이 안좋아서 차 한잔 마시고 물병에 따뜻한 차를 1/3통 얻어서 올라왔다. 컨디션이 안좋은 이유는 아마도 낮에 반바지로 걸었기 때문인 것 같다. 너무 답답해서 점심때 레깅스를 벗어버렸던 것이다. 화콜 2알과 비타민 한알을 먹었다. 빨리 회복되어야 할텐데. 빨리 카트만두에 가고 싶다. 따뜻한 물에 머리도 감고, 샤워하고 무엇보다 빨래를 빨리 해야겠다. 갈아입을 옷과 양말이 없다.

오후에 쿠마르의 말에 의하면, 비아그라는 효과가 없고 다이맥스는 4,000m쯤에서 먹기 시작하는 것이 좋단다. 너무 일찍 먹어버리면 3일 후쯤에는 기력이 쇠해서 못 올라가고, 그 때엔 약을 먹어도 소용이 없단다. 진작 알았으면 나도 4,500m쯤에서 약을 먹을 걸. 괜히 ○○○ 선생님께 다 드렸나보다. 물론 그 전에 반알은 먹었지만.

진통제와 항생제를 먹었더니 치통은 좀 나아졌다. 저녁에도 또 먹어야 하나 고민이다. 감기약, 비타민, 진통제, 항생제 등등 약을 너무 많이 먹는다.

오늘 아침식사때 ○○○ 선생님에게 정치에 대한 관심을 물었더니, 이번 총선에 출마하려고 했었단다. 사모님의 격렬한 반대로 인해 포기하셨단다. 어쩐지 이름이 낯이 익더라니. 어제 술을 마신 이후로 계속 속이 안좋단다. 속쓰림. 내가 가져온 노루모산을 몽땅 드렸다. 5-6개쯤. 이젠 그것마저도 떨어져서 제산제를 찾아 헤매신다. 지금 남을 걱정할 때가 아니다. 내 몸도 엉망이다. 저녁 먹고 와서 일찌감치 푹 쉬어야겠다.

저녁식사 메뉴는 네팔 전통음식은 ‘달밧’이었다. ‘달’은 검은 녹두, ‘밧’은 밥이란다. 여러 종류의 달밧이 있는데, 우리는 온갖 채소를 넣고 라임을 뿌려서 비벼먹는 것이었다. 녹두죽과 닭도리탕도 나왔고, 달밧 위에 바삭바삭한 ‘난’같은 것이 있어서 같이 먹으니 신선했다. 프라이드 치킨도 나왔다. 어디서 어디까지가 달밧이고 어디까지가 한국식 반찬인지도 모르겠다. ○○○ 선생님은 컨디션이 좋은지 ○○○ 선생님과 소주를 마셨다. 나도 빨리 컨디션이 회복되어야할텐데.

내일은 6시에 모닝콜, 7시에 식사, 8시에 출발이란다. 4시간에서 4시간반 정도 걸려서 루크라에 간단다. 가서 점심을 먹고 오후에 ㄴ자유시간. 근처에 시장이 있다니까 한번 둘러볼까 한다. 그리고 루크라에서 자고 모레 아침에 카트만두에 간다. 빨리 카트만두에 가고 싶다. 샤워와 빨래 때문에. 부디 내일 아침엔 상쾌한 몸과 마음으로 일어나기를...

지금 시간은 오후 7시. 전력사정이 위쪽보다 더 안좋은 것 같다. 계속 전등이 깜박거린다. 저녁 때에는 외국인 한팀이 도착했다. 열두세명 정도. 아마도 우리가 루크라에 도착한 시간에 도착한 것 같다. 6시쯤 이 곳 팍딩에 온 것을 보니 그런 것 같다.

 

10/16(일)

 

드디어 대장정이 거의 끝나간다. 아침 8시에 팍딩을 출발해서 점심에 이 곳 루크라에 도착했다. 4시간반이나 걸렸다. 오르락 내리락 하느라 진이 다 빠졌다. 게다가 어제부터 오른쪽 윗 어금니 썩은 데가 매우 많이 부었다. 바늘로 콕 찌르면 퍽하고 터질 것 같다. 어제부터 항생제를 먹고 있지만 2알밖에 남지 않았다. 게다가 진통제도 없다. 오늘 저녁에 한 알, 내일 아침에 한 알 먹으면 끝이다. 내일 카트만두에서 자고 모레 저녁에 한국으로 출발이다. 정말 아슬아슬하게 버티고 있다. 한국에 가면 우선 치과부터 가야겠다.

팍딩에서 이곳 루크라에 오는 길도 쉽지 않았다. 몸 컨디션도 안좋아서 더욱 그런 것 같다. 역시나 오늘도 중간중간 ○○○ 선생님이 간식을 한보따리씩 풀어놓았다.

이곳에 도착해서 따끈한 오렌지쥬스를 마시고 잠시 휴식. 쿠마르가 나에게 와서 팁얘기를 했다. 사람도 많고 등급도 다양해서 자기에게 주면 잘 배분하겠다는 것이다. 식당에 올라가 얘기를 꺼내니 역시나 반응이 제각각이다. 내가 지난 번에 갹출하여 남은 8,000루피에 각자 500루피씩 더해서 팁으로 주자고 제안했더니 그러자는 사람, 이미 팁을 120$씩 다 지불했는데 왜 또 주냐는 사람, 개인적으로 주자는 사람 등등 다양하다. 결국 내 제안에 따라 500루피씩 더내서 8,000+4,500루피를 주기로 하고, 저녁식사 후에 모두 불러놓고 ○○○ 선생님이 캡틴에게 주기로 했다.

점심식사로는 비빔냉면(한국의 청수냉면)이 나왔다. 나도 2그릇반이나 먹었지만, ○○○ 선생님은 4그릇이나 드셨다. 식사후에 방배정(나는 또 ○○○ 선생님과 합방)을 하고 일부는 루크라 시장에 가서 구경하고 커피도 마시겠다고 나갔다. 나는 몸이 안좋아서 숙소에 잔류. 감기기운인지 잇몸염증 때문인지 안좋다. 4시에 티타임이라니까 좀 쉬어야겠다. 아직 2시 10분밖에 안되었다. 계속 루크라공항의 비행기는 뜨고 내린다. 내일 아침에도 부디 비행기가 잘 뜨길 바란다. 빨리 한국에 가야지.

그리고 드디어 오늘 공금을 정산처리했다. 처음에 11,000루피를 걷어서 11,068루피를 지출(초과지출은 그냥 내가 부담했다)했고, 두 번째로 9,000루피를 걷어서 오늘 캡틴을 주기로 하고, ○○○ 선생님께 드리면서 정산보고를 했다. 정말 신경 쓰였는데, 이제야 홀가분하다.

저녁엔 쫑파티를 했다. 염소고기로 만든 수육, 양념갈비, 내장볶음 등을 먹었다. 그리고 쿠마르가 한잔 사겠다고 해서 포도주 4L짜리 한통을 받아서 먹고 마셨다. 서양 여자 한분이 민속음악에 맞추어서 춤을 추었고 ○○○ 선생님도 합류했다. 우리도 스텝들을 불러서 한잔씩 주고 갹출한 팁을 캡틴에게 주었다. 잠시 밖에 나와서 양찬덕 선생님과 얘기를 하는 사이에 만찬이 파했다. 양찬덕 선생님은 농수산부에서 근무를 하셨던 것 같다. 노모 때문에 부부동반은 어렵지만 자주 여행을 다니시는 편. 킬리만자로에도 다녀왔고 히말라야도 벌써 3번째란다.

 

10/17(월)

 

어젯밤에 쿠마르가 빈방이 하나 나왔다며 독방을 쓰겠냐고 했지만, 다시 보따리를 싸는 게 귀찮아서 그냥 ○○○ 선생님과 같이 자기로 했다. 한참을 같이 얘기하다가 9시쯤 취침. 12시쯤 일어나서 화장실에 가서 설사를 쏟아내고 다시 취침. 2시쯤 깨어 또 담배 한 대를 피고 다시 취침. 3시 40분에 기상. 아마도 집에 간다는 생각에 설레어서 잠을 설쳤나보다. 오늘은 4시반에 모닝콜이라서 조금만 기다리면 될 것 같다.

드디어 카트만두에 도착했다. 정말 우여곡절 끝에 도착했다. 5시반에 식사를 부랴부랴 하고서 6시부터 대기. 사람들이 상당히 많았다. 우리는 2번째 비행기라서 잠시 화장실에 다녀오는데 갑자기 탑승하라고 해서 화장실에 있던 ○○○ 선생님이 걱정되어서 대합실에 있던 가방을 들고 화장실에 다시 갔더니 안 계셨다. 다시 대합실에 가니, 내가 들고간 가방은 다른 사람의 것이어서 그 사람이 가방을 찾느라 분주한 모습이 보였다. 정말 쏘리. 원래 7시 15분 탑승이었는데, 6시반에 탑승해서 7시 20분에 카트만두에 도착했다. 도착해서 바로 타멜거리에 갔다. 시간이 남아서 커피숍에서 우아하게 커피와 빵을 먹었다. 거기서 모든 계산을 다 끝냈다. 둘쨋날 추가된 호텔비, 추가 수하물 요금 등등. 원래 내가 싱글요금을 냈는데, 3일이나 합방을 했다고 60$를 되돌려 준다는 것을, ○○○ 선생님의 추가요금 220$에서 20$을 깎고, 추가 수하물요금 40$을 내가 부담하는 것으로 했다. 결국 내가 다 부담한 셈이다.

타멜 시장에 가서 에베레스트 모자 9개, 머플러 10개, 티셔츠 1개, 쇠방울 1개 등을 선물로 샀다. 에베레스트 지도가 그려진 손수건을 사려고 했는데 없었고, 립밤은 내일 사기로 했다.

점심식사는 첫날 갔던 샹그릴라 식당. 삼겹살이 없다고 해서 닭불고기를 먹었다. 내가 월급날이라는 핑계로 맥주와 소주를 샀는데, 메뉴판의 가격이 세금이 포함된 것이냐고 캡틴에게 물었을 때 그렇다고 했는데, 나중에 보니 세금과 부가세가 별도였다. 무려 11만원도 넘었다. 게다가 담배 한갑을 직원에게 샀는데 무려 1,000루피, 우리 돈으로 1만원이 넘었다. 별로 신뢰가 안가는 식당이다.

그리고 드디어 Yak & Yeti 호텔에 체크인. 시원하게 샤워하고 머리감고, 양말 1개와 반팔 티셔츠 3개와 긴팔 셔츠 1개를 물에 흔들어서 널었다. 양말을 드라이어로 말리는데 잘 안 마른다. 포기. 와이파이를 받아서 작동시켰더니 카톡과 문자와 이메일이 엄청나다. 특히 이메일은 350개가 넘는다. 별로 중요한 것은 없는 것 같다. 대충 정리하고 내려가서 커피 한잔. ○○○ 선생님이 나오더니 ○○○ 선생님과 ○○○ 선생님도 내려오셨다. 커피와 쥬스를 다 내가 샀다. 지출이 얼마인지도 모르겠다. 까짓 거 맨날 쓰는 것도 아닌데. 하여튼 오늘은 정리모드라서 그런지 기분은 괜찮다.

이곳 Yak & Yeti 호텔은 이 곳에서도 제법 괜찮은 급인 것 같다. 지난 번 궁궐보다도 현대식이고 규모도 크다. 다만 아기자기한 맛은 좀 덜하다. 차를 마시면서 얘기를 해보니 ○○○ 선생님이 와이파이 카드를 안받으셨다길래 프론트에 가서 안되는 영어로 설명했더니 비즈니스센터에 가라고 해서 역시 짧은 영어로 설명해서 간신히 해결했다. 역시 외국어는 손짓발짓과 절박함이 가장 중요한 것 같다.

 

10/18(화)

 

이젠 진짜 마지막 날이다. 엊저녁은 7시에 1층 식당에서 다같이 식사. 뷔페식이었는데 그런대로 괜찮은 듯하면서도 뭔가 부족했다. 그냥 호텔 뷔페로 보면 부족하지만, 숙박에 따른 공짜식사로 보면 괜찮은 편이다. 커피와 차는 공짜지만, 쥬스는 추가 비용을 내야 한단다. ○○○ 선생님이 가져오신 소주 작은 패트병 3개 중에서 한 개를 나눠 마셨다. 그리고 해산. ○○○ 선생님은 핸폰 보조패터리 충전기가 고장났다며 나에게 부탁하셨다. 충전기를 받으러 그 방에 가보니 과일바구니가 있었다. 아마도 룸서비스이거나 누군가의 선물이리라. 정말 럭셔리하게 사신다. ○○○ 선생님께는 손톱깍기를 빌려 드렸다. 정말 내가 완전 총무로 자리매김한 것 같다. 돈은 돈대로 초과지출하고 일은 일대로 많이 했다. 덕분에 괜찮은 놈이라는 인정은 받았지만, 왜 굳이 그래야 했을까? 나도 잘 모르겠다. 내 오지랖 성격 때문일까? 고쳐질까? 고쳐야 할까?

 

10/19(수)

 

계속 잠을 못잤다. 엊저녁 식사후 잔디밭에서 잠시 담소. 8시반쯤 방에 와서 어영부영하다가 9시쯤 취침. 12시반쯤 깨어서 계속 뒤척거렸다.

오늘은 7시 식사. 10시반 집합, 11시 20분 출발, 11시 50분 인도식 점심식사, 오후엔 박타푸르 관광, 4시에 일본식 식사, 5시 출국이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호텔 정원에서 담배 한 대 피우고 올라와서 샤워하고 출발준비를 미리 끝냈다. 대부분의 짐을 카고백에 넣었다. 7시부터 아침식사. 엊저녁보다 오히려 나았다. 쥬스도 공짜로 나오고 말이다. 3접시를 먹고 디저트까지 포함하면 4접시를 먹었다. 빙하수를 가그린 병과 전날 비운 소주 패트병에 담고, ○○○ 선생님이 부탁하신 배터리까지 충전해서 들고 내려가서 전달했다. 푸짐하게 먹고 마시고 잠시 정원에서 담소. 그리고 다시 올라와서 영화 “17인의 결사대”를 봤다. 손문의 혁명거사를 돕기 위한 결사대를 그린 영화. 그리고 침대에 50루피를 놓고 10시 조금 넘어서 내려갔다. 역시나 내가 1등. 쿠마르가 왔길래 히말라야 립밤얘기를 했더니 전날 얘기했던 블르버드 상점에 가자고 해서 같이 갔다. 총 44개가 있었고, 개당 48루피. 모두들에게 5개씩 나눠주고 나는 4개만 가졌다. 항상 내가 손해를 보고 있다. 그리고 호텔의 상점에서 작은 불상을 12$에 구입했다.

혜초의 네팔사장님이 온다고 해서 기다렸더니 왜 우리가 사장을 기다려야 하냐고 투덜투덜. 그러나 사실은 사장님을 기다린 것이 아니라 전날 주문한 물건을 기다린 것이었다. 물건과 사장님이 도착. 그러나 이번에 네팔의 고위 장성이 와서 무슨 일 때문인지 완전히 출입이 통제되는 바람에 나갈 수가 없었다. 결국 투 스타 장군과 그 호위차량 10여대가 나간 후에야 출발할 수 있었다.

11시반쯤 인도음식점에 도착했다. 혜초에서 준비한 기념패를 한명씩 전달했다. 별 것 아닌 것 같은데도 나름 뿌듯했다. 가이드 쿠마르의 이름도 적혀있었다. 탄두리치킨과 난, 그리고 카레를 먹었다. 대전의 북하라인디아에서 먹던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 맛있었다. 난도 훨씬 부드럽고 쫄깃했고, 치킨도 큼지막했다. 또 ○○○ 선생님께서 맥주를 사신 덕분에 배터지게 먹고 마시고 나서, 오후엔 유적지 “박타푸르”에 갔다. 얼핏 봐도 엄청난 유적인데, 지난 지진으로 많이 무너졌단다. 안타까운 것은 복구기술이 부족한 듯하다는 것이다. 그냥 시멘트로 다시 벽돌을 쌓는 것 같았다. 세계문화유적이면 인류차원에서 공동으로 보호하고 복구해야할 것 같다. 유적지 내에 있는 루프탑 라운지에 가서 우아하게 커피 한잔. 나는 쿠마르와 담소. 부인이 둘이고 애는 넷이고, 어머니는 시골에서 의사이시란다. 그리고 네팔의 생활에 만족한단다. 큰 애는 18살인데 대학을 보낼 것이란다. 대학 학비는 3년에 50만루피이고 일시불로 입학할 때에 내야한단다.

박타푸르를 나와서 버스를 타고 4시에 근처 일본식당에 도착해서 이른 저녁으로 돈까스를 먹었다. 시간이 애매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혜초에 주문한 커피, 꿀, 치즈 등을 배분했다. 그리고 쿠마르가 버스기사에게 부탁해서 립밤 10개를 추가로 사다줬다. 선물이라고 했지만 500루피를 줬다.

다시 버스를 타고 공항으로 출발했다. 공항은 매우 가까웠다. 쿠마르가 한명씩 목에 스카프를 걸어줬다. 하마터면 눈물이 날 뻔했다. 작별인사를 하고 공항으로 들어갔다. 공금으로 갹출했다가 쓰고 남은 5,000루피 때문에 고생을 했다. 결국 커피 한잔씩 마시고, 껌을 한통씩 돌리는 것으로 끝냈다. 내 개인적으로 남은 루피는 black tea를 한통 샀다. 모든 루피를 청산하고 보안검색대로 진입했다. 그런데 담배갑이 금속탐지기에 걸릴 줄이야. 나원참. 자기들도 신기한지 몇 번 더 체크하다가 통과시켜줬다.

8시에 비행기에 탑승했다. 다시 한국시간으로 11시 15분이다. 출발은 거의 12시에 이루어졌다. 5시간반 후이면 도착한단다. 쿠마르가 네팔이 좋다고 했듯이 나도 한국이 좋다. 저녁식사인지 야식인지 모르겠지만 기내식이 나왔다. 나는 생선요리를 선택했고, 내 옆자리는 힌두음식인지 따로 나왔다. 옆자리에는 아버지와 딸인 듯한 사람들이 탔는데, 네팔사람이라고 했다. 승무원들과의 의사소통이 약간 어려울 때엔 내가 좀 도와줬다. 으쓱. 아주 겸손한 사람들이었다. 한국을 거쳐서 일본으로 간다고 했다. 비행기에서 내려서 환승할 때에는 내가 환승하는 장소까지 안내해줬다.

밤새 잠을 못자고 영화를 보면서 졸다 깨기를 반복했다. 드디어 5시반에 한국 도착. 마음이 놓인다.

 

※ 감사의 글

 

1. 큰형님 ○○○: 불굴의 노장인 줄만 알았는데, 우리보다 훨씬 더 활기차고, 젊음은 나이가 아니라 도전정신에서 나온다는 것을 실제 몸으로 보여주셨다.

 

2. 작은형님 ○○○: 특별히 고마운 분이다. 몇 번의 합방 동안 축구를 좋아하는 아드님한테서 받은 근육통 약도 주시고 다이맥스도 주시고. 훌렁훌렁 벗고 사타구니를 씻으시는 등 나를 매우 편하게 대해주셨다. 덕분에 나도 편하게 벗고 대할 수 있었다.

 

3. 에너자이저 ○○○: 정말 불굴의 의지가 무엇인지 보여주셨다. 칼라파타르와 EBC를 거침없이 도전하고 달성하는 모습은 영락없는 청춘불패의 모습이었다. 다만 내려올 때는 조금 지치신 것 같았다.

 

4. 현지인 스마일 ○○○: 숨쉬기운동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보여주신 분이다. 안나푸르나에 다녀와서 힘드실 만도 한데 항상 웃으시고 다른 사람들에게 힘을 주셨다.

 

5. 카메라맨 ○○○; 끊어질 듯 끊어질 듯 끊어지지 않는 거미줄처럼 항상 맨 뒤에서 열심히 사진을 찍으면서도 끝까지 도전하고 달성하는 모습은 인생마라토너와 같은 모습을 보여주셨다.

 

6. 긍정마인드 ○○○: 다같이 힘든 산행임에도 항상 긍정적인 모습으로, 조금은 아쉬울 만도 한데, 전혀 내색하지 않고 밝게 웃으시며 일행에게도 긍정과 밝음의 힘을 보여주셨다.

 

7. 만수르 김프로 ○○○: 중동재벌 만수르라는 별명처럼 푸짐한 간식을 끊임없이 베풀어주고 몸풀기운동도 가르쳐 주심으로써 이번 트레킹의 트레이너 역할을 해주셨다. 털털하고 소탈한 성격으로 분위기를 편안하게 만들어주셨다.

 

8. 만물박사 ○○○: 중간중간 힘들어했지만 굴하지 아니하고 쉬는 시간마다 풍부하고 다양한 지식과 경험담을 전해주심으로써 이번 트레킹동안 거의 책 한권을 읽은 것과 같은 지식을 전해주셨다.

 

9. 가이드 쿠마르, 람, 락마: 우리보다 동생이지만 한명 한명 살펴주고 챙겨주고 알려주는 섬세함에 감사한다. 여자였으면 아마 청혼했을지도 모를 정도. 엄마와 같은 푸근함을 느끼게 해주었다.

 

10. 주방팀과 포터팀에 대해서는 뭐라 말할 수 없을 정도로 고맙다.

 

※ 이번 트레킹의 의미

첫 번째 의미는 이런 좋은 분들과의 좋은 인연을 만들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렇게나 많은 좋은 인연을 통해 세상은 넓고 사람은 많다. 그리고 나는 그 중의 작은 먼지와도 같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고, 덕분에 더욱 겸손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두 번째 의미는 이번 트레킹을 신청할 때에 이미 거의 달성된 것이다. 얼마나 힘든지 알고 신청한 사람은 하나도 없다. 다들 경험하지 못했고, 다들 힘들다고 어렵다고 하는 것을 신청한 그 용기이다. 남들은 할 수 없다는 것을, 어렵다는 것을 신청하고 달성한다는 도전, 열정, 패기, 의지야말로 가장 큰 의미이다. 도전, 열정, 패기, 의지라고 하면 떠오르는 것이 무엇인가. 바로 젊음·청춘이다. 이번 트레킹의 가장 큰 의미는 바로 “내가 아직 젊다, 청춘이다”라고 세상에, 그리고 그 누구보다 나 자신에게 선언(공표)하고 확인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 자신에게서 나 자신의 의미를 찾는 것이 이번 트레킹의 의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