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소식

[일본] 1월 31일 니시호다카 설산 트레킹 5일 여행소식

2026-02-05 안준영

바라보는 설산에서, 오르는 설산으로
글/사진 혜초여행 안준영




일본 니시호다카 설산으로 들어가며 


‘히말라야(Himalaya)’라는 이름은 산스크리트어로 ‘눈의 거처’라는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유럽 알프스의 미봉 중 하나인 몽블랑 역시 이름 그대로 ‘하얀 산’을 의미합니다.
산의 이름 속에 이미 눈이 들어 있다는 사실은, 인류가 오래전부터 산을 눈과 함께 인식해왔다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산과 눈의 관계는 술과 잔의 관계와 닮아 있습니다.
잔이 없으면 술의 형태를 담을 수 없듯,
눈은 산의 윤곽을 가장 단순하고 명확하게 드러내는 매개입니다.
숲과 흙, 길이 사라진 자리에서 비로소 능선은 선이 되고, 사면은 면이 되며,
산은 본래의 구조를 숨김없이 드러냅니다.

이러한 이유로 설산 산행은 ‘겨울에만 가능한 특별한 산행’이 아니라,
산이라는 존재를 가장 원형에 가깝게 마주하는 방식이라 할 수 있습니다.
눈 위를 걷는다는 행위는 단순한 계절적 경험이 아니라,
산과 인간의 오래된 관계 속으로 다시 들어가는 일에 가깝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겨울 산행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으나,
‘정말로 설산 산행답다’고 부를 수 있는 환경은 많지 않은 것이 현실입니다.
제주도나 울릉도처럼 고도가 낮은 지역이나,
태백산·소백산·덕유산과 같은 명산 역시
적설량 면에서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눈이 깊게 쌓인 설산의 풍경과 조건을 안정적으로 경험하기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그만큼 겨울 산행에서는 정확한 눈의 조건을 갖춘 산을 찾아가는 일 자체가 중요한 기준이 됩니다.

조금만 눈을 돌려보면,
이웃나라 일본에는 우리나라보다 훨씬 풍부한 적설량과 긴 설산 시즌을 지닌
일본 북알프스가 있습니다.
그중 대표적인 설지인 하쿠바 지역은
연평균 적설량이 약 6.5m에 달하며,
해에 따라서는 7m를 넘는 적설이 기록되기도 합니다.
이는 세계적으로도 손꼽히는 수준의 눈의 양입니다.

이처럼 북알프스는 단순히 ‘눈이 쌓인 산’이 아니라,
‘눈이 삶의 일부가 된 산’입니다.
눈이 산 전체를 덮는 이곳에서는
단순히 고도를 올리는 산행이 아니라,
눈 위를 해석하며 전진하는 산행이 이루어집니다.

설산 산행은 단순한 시각적 풍경을 향유하는 여행이 아닙니다.
눈 속에서 몸으로, 감각으로 산을 읽어가는 과정입니다.
바람에 의해 형성된 설벽, 눈 아래 숨은 지형,
단단한 설면과 깊이 빠지는 심설의 차이까지,
눈은 산을 산답게 만들면서도
산행자에게 끊임없는 긴장과 판단을 요구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보는 설산이 아니라,
직접 몸으로 오르는 설산 속으로 들어갑니다.



1) 니시호다카 로프웨이 설산 트레킹

신호다카 온천에서 신호다카 로프웨이를 이용해
해발 약 2,156m의 니시호타카구치역까지 올라갑니다.
이곳은 북알프스 설산을 가까이에서 조망할 수 있는 지점으로,
로프웨이 승강장에서 바라보는 풍경만으로도 산과 눈이 함께 만들어내는 절경을 충분히 느낄 수 있습니다.



로프웨이 하차 후 진행하는 설산 트레킹 구간은
편도 기준 약 2시간 30분 내외로 다녀올 수 있는 코스입니다.
전반적으로 경사가 급하지 않아 설산 입문자에게 적합한 난이도로 분류됩니다.
북알프스 설산의 첫 장면은 이 니시호다카 로프웨이에서 시작됩니다.
로프웨이를 타고 단숨에 고도를 올리면, 세상은 갑자기 겨울의 중심으로 바뀝니다.
전망대 주변에서 진행하는 설산 트레킹은
그 길이가 길지 않지만 밀도가 높은 코스입니다.

강설과 강풍이 반복되는 지역 특성상,
눈의 상태에 따라 루트를 유연하게 조정하며 진행합니다.
능선에 오르면 북알프스 특유의 웅장한 설산 지형과 깊은 계곡이 시야 가득 펼쳐지며,
겨울 산이 지닌 규모감과 입체적인 풍경을 온전히 체감할 수 있습니다.
이 코스의 핵심은 “많이 걷는 것”이 아니라
설산 지형을 이해하며 걷는 과정에 있습니다.



크램폰 사용법, 보폭 조절, 바람을 피하는 위치 선정 등
설산 트레킹의 기본 기술들이 자연스럽게 체득되는 구간입니다.
처음 신어보는 크램폰에 걸음은 어색합니다.
마치 걸음마를 막 시작한 아이처럼, 조심스럽게 산을 오르기 시작합니다.
그러다 넘어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아프지 않습니다.
눈 위에서 넘어지면 세상은 포근합니다.
마치 엄마 품처럼 산이 몸 가까이 다가옵니다.



트레킹 중 마주하는 삼나무들은
족히 10미터를 훌쩍 넘는 높이로,
마치 무거운 코트를 입은 것처럼 눈을 뒤집어쓰고 서 있습니다.
어린 시절 공상 속에서 떠올리던 괴물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하얀 거인들 사이를 지나며,
한 발짝 한 발짝 미끄러지듯 눈 위를 딛고 올라갑니다.

설산을 오르는 일은
온몸으로 산을 사랑하는 일입니다.
풍경을 보는 것을 넘어,
산과 직접 부딪히고 기대며 관계를 맺는 시간입니다.

 


2) 가미코지 트레킹

겨울의 가미코지는 여름과 완전히 다른 얼굴을 보여줍니다.
사람이 사라진 계곡, 소리를 삼킨 강, 눈으로 덮인 평탄한 길이 이어집니다.
가미코지 트레킹은 설산 ‘등반’이 아니라
설산 ‘산책’에 가까운 코스입니다.
길은 완만하고 발걸음도 가볍지만,
그 풍경의 깊이는 결코 가볍지 않습니다.



갓파바시에서 바라보는
호다카 연봉
움직이지 않아도 충분히 압도적입니다.

이날은 걷기 위해 산에 오르는 날이 아니라,
산을 바라보기 위해 멈추는 날이었습니다.

가미코지는 목마른 그리움으로 찾아가는 곳입니다.
여름 등산 시즌이면 수많은 등산객과 관광객으로 붐비고,
상점가와 산장은 가장 활기를 띱니다.
하지만 겨울이 되면 사람의 발길은 끊기고,
숲속 산장과 가게들 역시 모두 문을 닫습니다.
그럼에도 이곳을 찾는 사람은 있습니다.
겨울에도 그 산을 그리워하는 이들입니다.
흠모하는 이의 동네를 서성이듯,
들어갈 수 없는 산 아래에서
그래도 닿을 수 있는 가장 가까운 곳까지
그리움 하나로 걸어 들어오는 길입니다.

최근 SNS에서 한 일본 등산객의 글을 본 적이 있습니다.
“혼자만의 고요한 가미코지를 누리고 싶었는데,
시끄러운 관광객들 때문에 다 망쳤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저는 조용히 그 글에 동의를 했습니다.



이번 여정에서도 우리는 팀으로 함께였지만,
때로는 각자가 되어 묵묵히 이 길을 걸었습니다.
말을 줄이고, 발소리만 남긴 채
자신의 호흡으로 가미코지를 지나갔습니다.
가미코지는 그런 곳이며,
그래야만 하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3) 구루마야마 파노라마 트레킹

이번 일정의 또 다른 백미는
야츠가다케 산역에 위치한
구루마야마 파노라마 트레킹입니다.

구루마야마는 접근성이 뛰어나면서도,
정상부에서는 360도 설산 조망이 가능한 코스입니다.
날씨가 허락하는 날에는 후지산까지 시야에 들어오는
광활한 파노라마가 펼쳐집니다.



야츠가다케 산역에 속한 구루마야마는
일본의 주요 산맥들을 한자리에서 조망할 수 있는 위치에 있습니다.
바로 앞에는 야츠가다케 산맥
남알프스가 병풍처럼 둘러서 있고,
그 사이로 후지산이 우뚝 솟아 시선을 끕니다.
발길을 북쪽으로 옮기면
마치 천공의 성처럼 흰 띠를 두른 북알프스가 멀리 펼쳐지고,
가까이에는 중앙알프스
수문장처럼 자리를 지키고 서 있습니다.



능선은 완만하고 설원은 넓어,
설산 트레킹이 처음인 고객에게도 부담이 적습니다.
이번 일정 가운데에서는
‘설산을 오른다’기보다 ‘설산을 즐긴다’는 표현이
가장 잘 어울렸던 코스였습니다.

이곳은 반드시 많이 걷지 않아도 되는 산입니다.
그저 그 자리에 서서 산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벅차오릅니다.
구루마야마는 오르는 산이기 이전에,
바라보는 대상으로서 충분히 완성된 산이기 때문입니다.

 


마치며

설산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답습니다.
그러나 그 눈 속으로 한 발짝 들어가 몸으로 오르기 시작하면,
설산은 전혀 다른 얼굴을 보여줍니다.

니시호다카에서는
눈 위를 딛는 법을 배우며 설산과 처음 관계를 맺었습니다.

가미코지에서는
오르지 않아도 산을 깊이 마주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구루마야마에서는
걷지 않아도 가슴이 벅차오르는 풍경 앞에 서게 되었습니다.

이번 여정은
설산을 ‘정복의 대상’으로 대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설산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각자의 속도로 들어가보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래서 설산이 두렵지 않았고,
그래서 설산이 더 오래 마음에 남습니다.

바라보는 설산은 언제나 아름답습니다.
하지만 몸으로 오르는 설산은 경이롭습니다.


차가운 바람과 눈의 감촉,
넘어져도 아프지 않았던 순간들,
말없이 같은 풍경을 바라보던 시간들이
이 여행을 단순한 겨울 산행이 아닌,
하나의 경험으로 완성시켜 주었습니다.
설산을 처음 만나는 분에게도,
겨울 산을 오래 그리워해 온 분에게도
이 여행은 충분한 이유가 됩니다.

걷는 거리보다 남는 감정이 길고,
오른 고도보다 기억이 더 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여행을 추천합니다.

설산을 보고 싶어서가 아니라,
설산 속으로 들어가 보고 싶은 분들께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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