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0
-
- 오기석
- 2026-03-19
- 출발일자 2026.03.07
[안나푸르나] 푼힐/베이스캠프 트레킹 12일
산행을 시작한 이틀째 그러니까 10일 아침, 산중의 공기는 차갑지만 명료합니다. 같은 방을 쓰는 용석이도 기척을 느끼고는 이내 몸을 일으킵니다. 가이드 라이가 어김없이 **‘5, 6, 7’**이라는 숫자를 읊조리며 우리를 일깨웁니다. 5시 기상, 6시 아침 식사, 그리고 7시 출발. 톱니바퀴처럼 정교하게 돌아가는 혜초여행사의 시스템을 보며, 과연 트레킹 전문이라는 명성이 빈말이 아님을 새삼 체감합니다. 카고백을 책임지는 포터팀, 입맛을 돋우는 쿠킹팀, 그리고 세심한 길잡이가 되어주는 세 명의 가이드까지. 이들의 헌신적인 도움 덕분에 우리는 오로지 걷는 일에만 집중할 수 있습니다.
?서울에서 먹던 밥보다 더 감칠맛 나는 한식으로 든든하게 배를 채우고 길을 나섭니다. 어제는 수줍게 모습을 감췄던 히말라야의 설산들이 오늘은 그 위용을 드러낼지도 모른다는 소식에 발걸음이 가볍습니다. 하지만 설렘도 잠시, 끝없이 이어지는 돌계단을 오르내리자 다리가 천근만근 무거워집니다. 챙겨온 무릎 보호대를 단단히 조여 매니 그나마 한결 낫습니다. 그렇게 500여 미터의 고도를 낮춰 내려가니, 우리와 이목구비가 꼭 닮은 구롱족의 터전, 촘롱 마을에 닿습니다.
?점심 식사 시간, 식탁 위에 오른 메뉴를 보고 눈을 의심합니다. 이 깊은 산중에서 마주한 것은 다름 아닌 비빔냉면입니다. 한국에 살다 온 적도 없다는 셰프의 솜씨는 놀라움을 넘어 경이롭습니다. 어떻게 이 척박한 지형에서 이런 식자재를 구하고 맛을 냈는지, 그야말로 '놀랠 노'자입니다.
?길 위에서 마주친 외국인 트레커들은 대개 이곳 촘롱에서 여정을 멈췄지만, 우리는 발걸음을 재촉해 로우 시누와까지 향합니다. 긴 출렁다리를 지나 다시 200여 미터의 고도를 높이자 숨은 턱까지 차는데 마침내 눈을 머리에 하얗게 이고 있는 봉우리들이 시야에 들어옵니다. 누군가의 입에서 터져 나온 탄성은 이내 우리 모두의 합창이 되어 산울림으로 번집니다.
?시누와 롯지에 도착해 저녁 식사를 마칠 무렵, 가이드 라이가 돌연 식당 불을 끕니다. 어둠을 가르고 등장한 것은 은은한 촛불이 켜진 케이크입니다. 오늘이 성호의 생일임을 잊지 않고 준비한 깜짝 파티입니다. 혜초여행사의 세심한 배려에 모두가 한마음으로 축하 노래를 부르며 히말라야의 밤을 달굽니다.
내일 부터 본격적으로 오르막 산행이 시작이라 포터들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롯지에 크게 불필요한 물품들을 맡기고 잠자리에 듭니다. 침구는 산안개를 머금은 듯 눅눅합니다. 하지만 창밖 어딘가에서 우리를 지켜보고 있을 설산의 존재감 덕분에, 그 불편함마저 히말라야가 주는 훈장처럼 느껴지는 밤입니다.
---- 마스타 가이드 라이, 보조 가이드 햄, 나마 너무 감사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