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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홍섭
- 2026-10-05
- 출발일자 2026.09.19
[추석연휴][실크로드4-1]파키스탄 북부 간다라+자연기행 11일
파키스탄 북부 간다라 & 자연기행 11일
**과거로 떠난 여행**
"여행이란 익숙한 일상에서 벗어나, 낯선 공간에서 참된 나를 마주하는 일이다."
누군가 남긴 여행의 정의가 이번 파키스탄 여정을 마무리하는 지금, 유난히 깊은 울림으로 가슴에 와닿는다.
라호르에서 시작해 스카두, 훈자, 스와트, 페샤와르를 거쳐 이슬라마바드에 이르기까지. 파키스탄 북부를 따라 이어진 11일간의 여정은 그 어떤 여행보다 '다름'의 가치를 깊이 체감한 시간이었다.
인종과 문화, 종교와 삶의 방식은 물론, 웅장한 고봉과 협곡, 황무지가 그려내는 대자연의 풍광까지 내가 살아온 세상과는 너무나도 달랐다. 낯선 풍경을 바라보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 낯섦을 거울삼아 내가 지나온 삶과 살아가는 세상을 가만히 들여다보게 만든 여정이었다.
'국가는 국민에게 어떤 의미이어야 하는가.'
'위정자의 참된 역할은 과연 무엇인가.'
길 위에서 뜻밖에도 정치와 사회에 관한 깊은 고뇌와 질문들이 꼬리를 물었다.
이 여정에 하나의 이름을 붙인다면 나는 단연 '과거로 떠난 여행'이라 부르고 싶다.
거리와 시장, 낡은 건물과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일상을 바라볼 때면, 마치 내가 어린 시절을 보냈던 60여 년 전의 아련한 풍경 속으로 걸어 들어간 듯한 착각이 들곤 했다. 급변하는 21세기의 찬란한 문명 속에서, 이곳의 시간만큼은 한참 느리게 흘러가는 듯했다.
물론 현대 문명의 편리함과 물질적 풍요만으로 삶의 행복을 단정할 수는 없다. 나의 삶이 더 행복하고 그들의 삶이 불행하다고 섣불리 재단할 수 없는 이유다. 오히려 여정이 깊어질수록 그 단순한 비교 너머의 진실이 보이기 시작했다.
겹겹이 둘러싼 만년설의 고봉과 깊이를 가늠하기 힘든 협곡…. '과연 이런 오지에서 사람이 살아갈 수 있을까' 싶은 험난한 환경 속에서도 사람들은 마을을 이루고 대를 이어 삶을 일구어내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얼굴에는 뜻밖의 평온함이 서려 있었다.
특히 낯선 이방인을 아무런 경계 없이 환하게 맞아주던 그들의 순박한 미소가 오랫동안 잊히지 않는다. 가진 것의 유무를 떠나 따뜻한 한마디와 차 한 잔을 건네는 모습에서, 옛 고향에서 느끼던 푸근한 인정을 떠올렸다. 문명의 편리함은 부족할지 몰라도, 풍요 속에서 조급하게 살아가는 나의 일상에서는 점차 사라져가는 '사람 냄새'와 삶의 평화가 그곳에는 여전히 깃들어 있었다.
그들이 매일 마주하는 대자연의 풍광은 진정한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끝없이 이어지는 산맥과 빙하가 흘려보낸 푸른 강물, 그리고 가슴을 압도하는 거대한 절벽들. 특히 깊은 협곡을 뚫고 이어진 카라코람 하이웨이를 달리던 순간은 잊을 수 없는 강렬한 잔상을 남겼다. 깎아지른 낭떠러지 위, 아슬아슬한 산허리 길을 지날 때마다 느꼈던 아찔함과 두려움은 일상의 지루함을 깨우는 값진 스릴이자 여행이 준 특별한 선물이었다.
이번 여행은 우리가 당연하게 누려온 일상의 기반들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해보게 했다. 깨끗한 물, 잘 닦인 도로, 의료와 교육, 통신과 교통 같은 보편적 환경들은 저절로 얻어진 것이 아니었다. 한 사회의 오늘은 오랜 시간 축적된 구성원들의 노력과 국가의 올바른 선택이 만들어낸 결과임을 새삼 깨닫는다.
동시에 스스로에게 물음을 던진다.
'문명이 발전하고 더 많은 것을 가지게 된 우리는 과연 그만큼 더 행복해졌을까.'
편리함은 넘쳐나지만 사람 사이의 온기는 옅어지고, 물질은 풍요로워졌으나 마음의 여유는 오히려 줄어든 것은 아닌지. 파키스탄 오지에서 만난 사람들의 순박한 미소가 그토록 오래 잔상으로 남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일 것이다.
11일간의 일정을 모두 마치고 귀국하려던 마지막 순간, 생각지도 못한 변수가 찾아왔다. 방콕 대홍수로 인해 항공편이 취소되면서 귀국이 하루 지연된 것이다. 잠시 당황스럽기도 했지만, 이 또한 여행이 선물하는 뜻밖의 한 페이지라 생각하니 마음이 편안해졌다. 예정대로 흐르지 않기에 여행이고, 이러한 우연과 여백이 훗날 더 깊은 추억으로 남는 법이다.
뜻밖에 얻게 된 숙소에서의 차분한 하루.
무료함을 달래려 끄적이기 시작한 글은 어느새 지난 11일의 길을 다시 차분히 걸어보는 소중한 성찰의 시간이 되었다.
돌아보면 이번 파키스탄 여행에서 내가 본 것은 웅장한 설산과 깊은 협곡, 오래된 간다라의 유적뿐만이 아니었다. 낯선 이들의 삶을 통해 지나온 나의 시간을 돌아보았고, 그들의 오늘을 바라보며 우리가 누리는 삶의 의미를 고뇌했으며, 그들의 순박한 미소 속에서 참된 행복의 조건이 무엇인지 다시 묻게 되었다.
결국 이번 여정은 단순한 파키스탄 여행이 아니었다. 시간을 거슬러 과거로 떠났다가, 그 과거의 풍경 속에서 비로소 오늘의 나 자신을 다시 만난 뜻깊은 여행이었다.
낯선 세상을 찾아 먼 길을 떠나지만, 결국 여행의 끝에서 다다르는 곳은 언제나 '나 자신'이라는 사실. 이것이 내가 여전히 길 위에 서는 이유이자, 여행을 멈출 수 없는 까닭이다.